스톤헨지의 시초일까, 잊힌 선배일까
고대 장례의 흔적 ‘플래그스톤스’의 재발견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영국을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 스톤헨지(Stonehenge)는 약 5000년 전 지어진 거대한 석조 구조물로, 고대인의 상상력과 기술을 보여주는 상징적 유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보다 200년 앞서 조성된 유적이 발굴되면서 스톤헨지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영국 남부 도체스터(Dorchester) 외곽에서 발견된 '플래그스톤스(Flagstones)'라는 이 유적은 약 5200년 전인 기원전 3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곳은 영국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대형 원형 석조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사례로 평가된다.
◆ 스톤헨지의 선배, 플래그스톤스
플래그스톤스는 지름 100미터에 달하는 원형 도랑과 흙 제방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도랑 내부에서는 화장된 성인 유골과 매장된 어린이 유해 등 7구 이상의 인골이 확인됐고, 벽면에서는 조각 흔적도 발견됐다.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아, 장례나 의례 목적의 공간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유적은 1980년대 도로 공사 중 우연히 드러났다. 절반이 현재 도로 아래에, 나머지는 소설가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옛 자택 정원 아래에 묻혀 있다.
하디의 정원에서는 1890년대에 대형 석재가 발굴돼 '드루이드 스톤(Druid Stone)'으로 불렸고, 당시에는 독립된 유물로 여겨졌으나 이후 플래그스톤스 유적의 일부였음이 밝혀졌다.
에섹스대, 히스토릭 잉글랜드, ETH 취리히, 흐로닝언대가 함께한 국제 공동 연구팀은 1980년대 수집된 유물과 유골을 바탕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 인류의 활동 흔적은 기원전 3650년 무렵으로 확인됐으며 약 400년 뒤인 기원전 3200년경 원형 도랑이 조성되고 장례도 함께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이 유적은 한 시기에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연구팀은 도랑이 조성된 시점보다 약 1000년이 지난 기원전 2200년경에 매장된 젊은 남성의 유골도 확인했다. 이는 플래그스톤스가 오랜 세월에 걸쳐 장례와 의례의 장소로 활용됐음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는 국제 고고학 학술지 "앤티쿼티(Antiquity)"에 실렸으며, 연구팀은 플래그스톤스가 영국의 장례와 의례 방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 장례의식이 남긴 거대한 연결고리
플래그스톤스는 구조 면에서도 스톤헨지와 유사성을 보인다. 원형 도랑과 유골의 배치 방식, 화장과 매장이 함께 존재하는 점 등이 닮아있다.
수잔 그리니(Susan Greaney) 박사(에섹스대학교 고고학과)는 "플래그스톤스는 초기 유적의 특징과 후기 헨지(henge) 양식을 동시에 갖춘 드문 사례"라며, "연대 분석 결과 이 유적이 생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조성됐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어 "스톤헨지의 초기 형태는 플래그스톤스와 거의 동일하다. 플래그스톤스를 참고했을 가능성도 있고, 스톤헨지의 조성 시점 자체를 다시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단순히 유적의 연대를 앞당긴 데 그치지 않는다. 매장에서 화장으로, 직선 구조에서 원형 구조로 바뀐 흐름은 당시 사람들이 죽음을 인식하고 기념하는 방식이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또 플래그스톤스가 고립된 유적이 아니라, 넓은 문화권 내에서 상호 연결된 흔적이라고 본다.
내부 조각에서는 아일랜드 거석 예술과 유사한 곡선 무늬가 확인됐고, 웨일스 북부 그위네드 지역의 "란디가이 헨지(Llandygái Henge)" 역시 비슷한 구조와 장례 양식을 지닌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곳에서는 22구 이상의 화장 유해가 도랑 주변에 묻혀 있었으며, 스톤헨지 초기 단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유사성은 의례 문화의 확산뿐 아니라 지역 간 활발한 교류 가능성까지 함께 시사한다.
피터 마샬 박사(Peter Marshall)는 "도체스터는 해안에서 가까워 배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을 것"이라며, "기원전 3200년 무렵은 아일랜드 보인 계곡과 오크니 제도 등지에서도 주요 유적이 집중적으로 조성되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플래그스톤스는 단순한 고대 유적이 아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공동체를 어떻게 이어갔는지를 보여주는, 고대 사회의 깊은 흔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