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연구팀, 선사 유적에서 불 사용의 새로운 목적 규명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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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고기를 오래 보관하기 위해 연기와 열로 말리는 '훈제' 방식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교(Tel Aviv University) 연구팀은 약 18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불의 흔적과 연기 성분을 분석해, 초기 인류가 고기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훈제를 활용했을 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놨다. 

이번 논문은 국제학술지 '프런티어스 인 뉴트리션(Frontiers in Nutrition)'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rontiers in Nutr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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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순 조리가 아닌 '보존'의 도구…불 사용의 기원 재해석

연구팀은 약 180만 년 전부터 80만 년 전 사이 불이 사용된 전 세계 유적 9곳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유적에서는 불에 그을린 동물 뼈, 재, 탄화 흔적 등이 발견됐으며, 대부분 코끼리, 하마, 코뿔소와 같은 대형 동물의 사체와 함께 출토됐다.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그을린 뼈 일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el Aviv University
이번 연구에서 분석한 그을린 뼈 일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el Aviv University

이는 초기 인류가 단순히 고기를 익히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대량의 고기를 장기간 저장하고자 불을 사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 같은 해석은 기존의 "불은 조리나 난방을 위해 사용됐다"는 관점을 전환시키는 것이다. 특히 연구팀은 고기를 즉시 섭취했을 때보다 훈제나 건조 방식으로 저장했을 때 에너지 효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코끼리 한 마리가 제공할 수 있는 열량은 약 20~30인의 집단이 한 달간 생존할 수 있는 수준에 달한다. 이러한 귀중한 자원을 외부의 포식자나 부패로부터 지키기 위해, 초기 인류가 연기와 열을 이용하는 저장 기술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 에너지 효율과 미래 대비…'불'은 문화적 진화의 신호

이번 연구의 특징은 단순 유물 분석을 넘어, 고기 저장 방식에 따른 생존 가능성과 에너지 수지를 정량적으로 비교한 점이다. 연구팀은 이를 '생체 에너지 접근법(bioenergetic approach)'이라 부르며, 초기 인류가 식량 보존을 위해 어떤 전략을 선택했는지를 계산 기반으로 추론했다. 이를 통해 훈제를 포함한 저장 방식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고차원적 사고와 계획성의 산물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텔아비브대 고고학자 란 바르카이(Ran Barkai) 교수는 "당시 불은 쉽게 다룰 수 있는 도구가 아니었고, 연료를 모으고 오랜 시간 불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다"며 "이러한 수고를 감수할 만큼 불의 사용에는 강력하고 실용적인 동기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코끼리 뼈를 든 란 바르카이 교수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el Aviv University
코끼리 뼈를 든 란 바르카이 교수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Tel Aviv University

연구에 함께 참여한 미키 벤 도르(Miki Ben-Dor) 박사는 "초기 인류에게 대형 동물은 단순한 사냥감이 아니라 고기와 지방의 저장고였으며, 이들을 장기간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전략이 바로 훈제였다"고 밝혔다.

불을 다루고 유지하는 기술은 단순한 생존 수단을 넘어, 초기 인류가 미래를 예측하고 자원을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존재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연구팀은 "불의 사용은 결국 문화적 진화의 시작점이며, 공동체 생활과 식량 분배, 나아가 문명의 기반이 된 중요한 분기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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