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인류가 겪는 가장 흔하고 오래된 고통 중 하나인 치통. 이 지긋지긋한 통증의 기원이 무려 약 1억 년 전 백악기 시대의 고대 어류에서 시작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된 치통의 역사가 밝혀지면서, 치아의 진화 과정과 통증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됐다.
영국 브리스톨 대학교와 중국 과학원 척추동물 고생물학 및 고인류학 연구소(IVPP) 공동 연구팀이 참여한 이번 연구는 왜 치아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통증을 느끼는 신경이 함께 발달했는지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저널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 치아 진화와 통증 신경의 탄생
지금까지는 치아 통증이 주로 포유류의 특정 신경계 발달과 연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치아 통증의 근본적인 진화적 뿌리가 훨씬 더 깊다는 것을 밝혀냈다. 연구팀은 1억 2천만 년 전 백악기에 살았던 멸종된 어류 '화산어(Fossifrontia)' 화석을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연구팀은 X선 현미경과 컴퓨터 단층촬영(CT) 기술을 활용해 화산어의 치아 구조를 정밀하게 재구성했다. 그 결과, 이 고대 어류의 치아 내부에 신경과 혈관이 지나는 미세한 통로인 상아세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현대 포유류의 치아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특히, 이 상아세관을 통해 신경 섬유가 치아의 상아질까지 뻗어 통증 신호를 전달할 수 있었음을 시사했다.
브리스톨 대학교의 필립 도나휴(Philip Donoghue) 교수는 "치아는 먹이를 효율적으로 섭취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도구로 진화했지만, 동시에 통증이라는 진화적 대가를 치렀다"고 설명했다. 치아 표면의 단단한 에나멜과 상아질이 손상되면 그 아래 신경과 혈관이 있는 치수(Pulp)에 직접 자극이 가해져 극심한 통증이 발생한다.
연구팀은 치아의 이러한 독특한 구조가 통증을 느끼는 신경 발달을 촉진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즉, 치아의 탄생은 먹이를 잡는 능력을 혁신적으로 향상시켰지만, 동시에 손상 시 치명적인 결과를 경고하기 위한 시스템이 필요했기에 통증 신경이 함께 발달했다는 것이다.
◆ 치통, 생존을 위한 '필수 경고 신호'였다
그렇다면 이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타나는 치통은 왜 진화 과정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왔을까? 연구팀은 치통이 생존에 필수적인 중요한 '경고 신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치아 손상은 음식 섭취 능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생존의 위협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치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강렬한 통증을 통해 개체가 위험을 인지하고 즉시 대처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설명이다.
중국 과학원 IVPP의 장밍 리우(Mengyu Liu) 박사는 "화산어에 대한 연구는 치아의 진화적 성공 뒤에 숨겨진 '고통'이라는 대가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치아는 턱과 함께 포식 능력을 극대화하고 다양한 먹이를 섭취하게 하면서 척추동물의 번성을 이끌었다. 그러나 치아가 발달하면서, 손상 시 치명적인 결과를 경고하기 위한 통증 시스템 또한 함께 진화했다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다.
이번 연구는 인류의 치통이 단순한 질병이나 개인적인 불운이 아니라, 약 1억 년 전 치아를 가진 초기 척추동물부터 이어져 온 생존을 위한 진화의 유산임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통증의 기원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미래 치과 치료 및 통증 관리 연구에도 중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