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손상된 치아의 법랑질이 스스로 복원되는 기술이 현실로 다가왔다. 영국 셰필드대학교 연구팀이 자연의 법랑질 형성 과정을 모방한 '초분자 단백질 매트릭스'를 개발해 손상된 치아 표면의 강도와 구조를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성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단순한 실험이 아니라 치과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기술이다. 지금까지는 충치나 마모로 손상된 부위를 인공 수복재로 메워 넣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이번 연구는 손상된 조직을 '재생'시켜 본래의 법랑질 특성을 되살린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 생체 원리를 모방한 단백질 매트릭스
연구팀은 법랑질이 형성되는 생체 환경을 정밀하게 재현하기 위해 '엘라스틴 유사 재조합단백질(ELR: elastin-like recombinamer)' 기반의 초분자 구조체를 설계했다.
이 단백질 매트릭스를 손상된 치아 표면에 도포하면, 칼슘과 인산 이온이 결합해 아파타이트(apatite) 결정이 성장하고 본래 법랑질과 같은 미세결정 배열이 재형성된다.
실험 결과, 손상된 치아 표면에 두께 2~10마이크로미터(μm)의 재생층이 형성됐으며, 경도와 탄성 같은 기계적 특성이 건강한 법랑질 수준으로 회복됐다.
아래 이미지는 법랑질 손상 전후의 변화를 보여준다. 왼쪽은 칼슘과 인산이 빠져나가 표면이 부식된 상태의 치아이고, 오른쪽은 같은 시료에 단백질 젤을 도포해 2주간 굳힌 결과다. 손상됐던 표면이 다시 치밀한 결정 구조를 이루며 재생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단순한 표면 코팅이 아닌 '자기조직화(self-assembly)'를 통한 구조적 복원으로 평가했다.
본 연구의 필두 저자인 압샤 하산(Absha Hasan) 연구원은 "치아의 법랑질은 물리적·화학적·열적 자극으로부터 평생 치아를 보호하는 놀라운 구조를 지닌다"며 "이번에 개발한 재료를 탈회·침식된 에나멜질이나 노출된 상아질에 적용하면 결정이 통합적이고 조직적으로 성장해 천연 법랑질의 구조를 회복한다"고 설명했다.
◆ 치아 치료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법랑질은 체내에서 한 번 손상되면 재생되지 않는 조직이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치과 치료는 인공 수복재를 이용한 '보충'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생체의 복원 메커니즘을 인공적으로 되살려, 손상 부위를 본래 상태에 가깝게 되돌리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연구를 이끈 알바로 마타(Alvaro Mata) 교수는 "이번 기술은 임상의와 환자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며 "안전성이 뛰어나고 빠르게 적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치과 문제를 겪는 모든 연령층의 환자를 지원하는 제품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이번 연구는 발치된 치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실 단계에 머물러 있다. 실제 구강 내 환경에서의 안정성, 장기 내구성, 마모 저항성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연구팀은 향후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통해 효과를 확인하고, 치아 재생 코팅제 형태의 상용화를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