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베네치아 산마르코 광장을 지키는 청동제 사자상, 흔히 '베네치아의 사자'로 불리는 이 조각상이 중국 당나라 시대(618~907년) 제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최근 국제학술지 '앤티퀴티(Antiquity)'에 실린 연구는 이 상징적 조각상이 단순한 유럽 예술품이 아니라,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동아시아 유물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청동의 기원, 장강 유역에서 확인
이탈리아 파도바대학교 연구팀은 사자상 표면 여러 지점에서 채취한 9개의 샘플을 질량분석법으로 조사했다. 청동은 구리와 주석이 주성분인 합금이지만, 소량의 납이 포함되어 있으며, 납 동위원소 비율은 광석 산지를 추적하는 지표로 활용된다.
분석 결과, 사자상에서 검출된 납 동위원소 비율은 중국 장강 하류 지역 광산과 일치했다. 이 지역은 당대와 이전 시대에도 구리, 금, 은 등 주요 광석이 풍부하게 매장된 곳으로, 은 왕조(BC 1600~1050) 유물에서도 유사한 동위원소 수치가 확인됐다.
사자상의 외형 역시 당대 장례용 수호상인 '진묘수(鎮墓獸)'와 닮았다. 뾰족한 귀와 갈기, 혼합된 동물적 특징, 잘려나간 듯한 뿔의 흔적은 전형적인 당대 조각 양식을 반영한다.
연구팀은 "베네치아 사자는 단순한 서양식 조각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 마르코 폴로 가문과 실크로드 전래 가능성
사자상이 베네치아에 자리 잡은 시기는 1260년대 무렵으로, 13세기 말에는 이미 보수 기록이 남아 있다. 연구팀은 기원의 단서로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 폴로와 함께 중국을 여행한 부친 니콜로 폴로, 숙부 마테오 폴로를 주목했다. 두 사람은 쿠빌라이 칸 궁정에서 약 4년간 머물렀으며, 이 시기 실크로드를 통해 당나라에서 제작된 사자상을 베네치아로 가져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논문 공동저자이자 파도바대 고고학과 마시모 비달레(Massimo Vidale) 교수는 "베네치아는 비밀이 많은 도시지만, 이번 연구로 한 가지 수수께끼가 풀렸다. 산마르코의 사자는 중국에서 제작되어 실크로드를 거쳐 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조각상은 단일 문화권의 산물이 아니라, 중세 지중해와 동아시아를 연결한 교역과 문화 교류의 산물임을 보여준다"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을 넘어, 유럽과 동아시아의 예술적 상호작용과 중세 교역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고 평가한다. 사자상은 베네치아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과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문화권과의 연결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