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약 13만 년 전 살았던 고대 인류 네안데르탈인이 가장 위험한 포식자 중 하나인 동굴 사자의 뼈를 이용해 다용도 도구를 만들고 재활용까지 한 흔적이 벨기에 스클라디나 동굴(Scladina Cave)에서 발견됐다.
※ 동굴 사자(Panthera spelaea)
동굴 사자는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 시대에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서식했던 거대한 육식동물로, 현대 사자의 아종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현생 사자보다 몸집이 훨씬 컸으며, 주로 매머드, 들소, 순록 등 대형 초식동물을 사냥했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의 지능과 뛰어난 적응 능력에 대한 기존 인식을 뛰어넘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다.
◆ 사자뼈로 만든 '만능 뼈 도구'의 정체
스클라디나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 유물 중 4개의 뼈 도구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이 도구들은 모두 동일한 동굴 사자의 정강이뼈(tibia) 하나를 가공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단백질 분석을 통해 이 뼈 도구들이 이전에 동굴 곰의 뼈로 추정되었던 것과 달리 동굴 사자의 것이었음을 밝혀냈다.
겐트 대학교의 그레고리 아브람스(Grégory Abrams)가 이끄는 연구팀은 "동굴에서 발견된 동물군 유물은 동굴 사자의 유해로 만들어진 뼈 도구의 가장 이른 증거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이 정강이뼈는 처음에는 '중간 도구(intermediate tool)'로 사용된 후, 부싯돌을 다듬는 '리터처(retoucher)'로 용도가 변경되는 등 여러 기능을 수행하도록 의도적으로 가공됐다. 두 개의 뼈 도구는 심지어 완벽하게 맞물려, 도구 제작 과정의 의도성과 정교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특정 작업을 위한 단일 목적 도구와는 확연히 구분되며, 네안데르탈인이 필요에 따라 도구를 최적화하는 복합적인 사고 능력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다.
◆ 네안데르탈인의 지능과 생존 전략 재평가
네안데르탈인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정교한 도구와 기술을 만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한 창의력을 발휘해 예술 작품으로 삶을 장식하기도 했다. 또한,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며 생존 전략을 유연하게 변경하는 뛰어난 적응력을 지녔다.
연구팀은 "스클라디나 동굴에서 동굴 사자 유해로 만들어진 뼈 리터처가 발견된 것은 구석기 시대 고고학 기록에서 전례 없는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네안데르탈인이 대형 육식동물을 포함한 이용 가능한 자원을 선별적으로 활용하는 능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유해를 체계적인 가공 과정을 거쳐 다기능 도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반영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