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오현석 공인회계사 이미지 출처 / 가람세무회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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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오현석 회계사ㅣ서울에서 나고 자란 한의사 K씨는 오랫동안 살던 집이 재개발 되면서 서울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K씨는 이집 말고도 부인 명의로 또 다른 집을 하나 더 갖고 있었다. K씨는 재개발 시행사인 갑(甲) 회사에 살던 집을 팔고 새로 아파트를 구입하여 이사하기로 정했다.

그러나 일이 생겼다. 갑 회사가 약속한 날짜에 잔금 지급을 안 해줘서, 잔금을 받아 새 아파트 잔금을 치르려 했던 K씨의 계획이 틀어진 것. 주변에 되는대로 융통해서 새로운 주택의 잔금을 치렀고 등기도 K씨의 명의로 마쳤다. 갑 회사는 약속보다 일주일이 지나서 잔금을 가져와 K씨는 그날 등기서류를 넘겨줬다.

요즘은 주택 양도에 대한 과세가 꽤 완화되었지만 20년 전만해도 부동산 열풍이 대단했던 때라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는 징벌적 과세에 가까웠다. 특히 1세대가 3주택 이상을 보유하였다가 매도하는 경우,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적용되지 않았고 세율도 양도차익의 66%을 적용해 과세했다. 게다가 일시적 다주택에 대한 유예규정도 없었다.

K씨 사건의 사실 관계는 간단하다. 살던 집이 개발되어 팔고 대체주택을 취득하는데, 내 집을 사가는 사람에게 잔금을 받아 그 돈으로 새로운 주택의 잔금을 치르고 입주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K씨는 이미 다른 주택이 더 있어 1세대 3주택이 될 처지였지만, 갑 회사가 잔금 약속을 안 지켰다고 해서 K씨가 구입한 주택의 잔금을 미룰 수는 없는 것이었다. 주택을 매입하고 돈을 줬는데 등기를 안 해올 수도 없는 것이고, 잔금을 받지 못했는데 등기를 내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며칠에 불과하지만 부득이 1세대 3주택에 해당되어 고율의 과세를 피할 수가 없었다.

K씨는 동대문세무서장의 부과처분에 불복해 이의신청과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인용되지 않았다. 갑회사의 이행지체로 인해 발생한 사건으로 수 억원이나 세금을 내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자기가 집장사라도 하면서 돈을 불릴 생각이었으면 모를까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지역에도 봉사하며 성실하게 살았다고 누구보다 자부했는데 이런 경우를 당하니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세무전문가에게 찾아 가보니 조세의 큰 원칙으로 실질과세에 따라 구제받을 수도 있을 거라는 의견을 들었지만, 불복과정에서 위원회는 K씨의 사정을 딱하지만 현행 법률로는 방법이 없다는 결론만 냈다. 법규정의 문리적 해석에서 단한발도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부당하다고 생각한 K씨는 변호사를 고용해서 소송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1심도 2심도 K씨의 억울함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K씨는 자신의 억울함을 푸는 걸 포기했다. 마지막으로 대법원까지 판단을 구해보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여태 속시원한 결론 없이 답답했고 자신의 주장이 공허하게도 여겨졌다. 3년을 끌며 돈도 돈이지만 시간이나 체력도 많이 이미 많이 소진됐다. K씨는 이미 80이 되었다.

그렇게 종결되고 잊고 있던 어느 날, 새로운 대법원 판례를 통해 K씨와 거의 유사한 사건에서 납세자가 승소하는 판결이 나왔다. 2심까지는 K씨와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던 사건이었는데 대법원에서 납세자의 사실관계를 받아들여 세법의 규정과는 다소 다르더라도 실질 판단에 따라 세법을 적용하는 것이 과세정의에 부합한다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판례가 있더라도 그 결과를 K씨의 사례에 당연히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고, K씨도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우리의 과세행정 절차에는 납세자 보호를 위한 불복제도로 이의신청, 심사청구, 심판청구, 감사원청구 등을 규정하고 있다.

행정절차에서 구제되지 않는 경우 법원에서의 행정소송으로 1심도 있고, 2심도 있다. 필자는 늘 엄격한 과세행정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실질과세를 위해 과세기관의 충분한 행정조사와 적절한 법리적용을 위한 과세기관의 진일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그걸 적극행정과 연결시키려고 하지만, 필자는 적극행정 보다는 과세원칙에 대한 확고한 관행의 확립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납세자에게는 현행 과세행정 실무는 실질과세에 대한 판단에 대단히 소극적인 점을 감안하여 납세자의 주장이 실질과세의 판단을 구하는 경우라면 법률상 최종심인 대법원까지 판단을 받아보는 것을 권한다.

물론 K씨가 당시 대법원의 판단을 구했더라도 꼭 인용됐을 거라고 보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K씨의 사례를 직접 경험한 필자로서는 아직까지도 아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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