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석 가람세무회계 대표 회계사 연재 기고
ㅣ데일리포스트=오현석 회계사ㅣ전기 일을 하던 갑(甲)은 허리를 다쳐 일을 그만두게 됐다. 회복을 위해 구리에 있는 집에서 머물던 때, 세무서로부터 우편물이 날아들었다. 세금고지서였다. 놀란 마음에 우편물에 적힌 세무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다. 답변은 ‘제2차 납세의무자’로 지정돼 세금이 고지됐다는 것. 납세의무자도 낯선데, 제2차 납세의무자는 더 알 수 없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갑(甲)은 몇 년 전 친하게 지내는 형인 병(丙)의 요청을 받았다. 약속에 나가니 형은 지인인 여성 사업자 을(乙)이 신용이 안 나오니 대신 몇 개월 회사 대표와 대주주 명의를 갑(甲)으로 옮겨 줬으면 했고, 문제는 없을 텐데 만일 문제가 되면 본인이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
갑(甲)은 을(乙)을 처음 봤지만 거절할 수 없는 관계인 병(丙)이 책임진다는 말에 요청을 수락했다. 법인 등기를 위해 갑(甲)은 개인 서류를 전달했고, 며칠 뒤에는 법인 대출을 위해 은행에도 따라갔다. 문제는 갑(甲)이 회사에 명의를 올렸던 기간 동안 회사가 거래한 매출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회사가 납부하지 않아 당시 과점주주로 되어 있던 갑(甲)에게 법률에 따라 이차적인 납세의무가 지워진 것이다.
세무공무원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갑(甲)에 대해 제2차납세의무자 지정결정을 하고 고지서를 우편발송 했으나 세 차례나 ‘폐문부재’ 사유로 송달이 안되어 공시송달을 했다. 갑(甲)은 세무공무원에게 우편발송은 언제 했는지 공시송달은 어떻게 했는지 물었지만 세무공무원으로부터 구체적인 답은 받을 수 없었다.
갑(甲)은 자신은 을(乙)과 알지 못하는 사이이고 연락도 안 된다고 했더니, 그럼에도 을(乙)의 확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급한 마음에 친한 형인 병(丙)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고, 직접 을(乙)을 수소문해 나서기도 했다.
을(乙)은 무슨 사정인지 의정부교도소에 수감된 후 이미 출소한 상태였다. 병(丙)은 을(乙)의 확인서를 구해 갑(甲)에게 건네왔다. 이런 사정을 갖고 다시 세무공무원에게 전화를 했더니 새로 바뀐 담당공무원은 이미 불복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버려서 고충민원을 제기해보라고 했다. 위원회는 갑(甲)의 입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갑(甲)은 억울한 심정으로 조세심판원을 찾아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심판원의 소개로 국선대리인을 배정받았다. 우선 조세심판의 형식적 요건이 갖춰져야 했다. 법정 청구기간이 지났다면 청구 이유가 있다해도 본안심리 전에 각하된다. 심판청구 할 수 있는 기간은 처분일로부터 기산되는데 만약 적법한 처분이 아니었다면 청구기간을 특정할 수 없을 것인데, 두 가지 쟁점이 있다.
하나는 세무서가 공시송달한 것이 적법한지에 대한 판단이다. 공시송달이 가능한 사유에 대하여는 법정하고 있다. 또 하나는 제2차 납세의무자의 지정통보가 처분에 해당하는지와 처분이라면 적법한 처분절차를 지켰는지에 대한 판단이다. 행정청이 국민의 권익을 침해하는 처분을 할 때는 사전에 통지하고 의견을 청취하여야 한다. 세법에서 납세자의 권익 보호에 대해 제대로 규정하고 있지 못하다면 행정절차의 기본 규정을 따라야 납세자 보호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다.
갑(甲)의 심판청구가 적법하다면 비로소 이유가 있는지를 따져 볼 수 있다. 갑(甲)의 말대로 갑(甲)은 을(乙)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어떠한 의사결정도 하지 않았고, 오로지 아는 형인 병(丙)이 책임지겠다는 말만 믿고 형식적인 협조만 한 것인 경우, 제2차납세의무자 지정을 배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이 있을 것이다.
갑(甲)의 사정은 안타깝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자신의 명의를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는 소위 명의대여는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과세기관의 납세자 보호 노력도 좀더 구체적이고 실효적으로 배가되었으면 좋겠다.
납세자 보호는 정보제공에서 시작된다. 처분근거를 사전에 통지하여 억울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청취해야 할 것이며 불복절차에 대한 안내를 통해 구제받을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 억울함을 해소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또 법에서 정한 세무공무원의 절차적 권한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납세자 보호를 세심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