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남성형 탈모 치료제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가 자살 위험과 관련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피나스테리드는 탈모와 전립선 비대증 치료에 널리 쓰이는 약으로, 남성호르몬의 대사 경로를 조절해 모낭의 위축을 억제한다. 그러나 최근 메타분석 결과에서 일부 사용자에게서 우울감, 불안, 수면장애뿐 아니라 자살 충동까지 보고되며 안전성 논란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The 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에 게재됐다.
◆ 신경스테로이드 억제, 기분장애로 이어질 가능성
이스라엘 하다사-헤브라이대학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발표된 8건의 임상 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피나스테리드 복용과 정신건강 간의 연관성을 평가했다. 분석 결과, 복용자는 비복용자보다 기분장애나 자살 사고를 겪을 확률이 통계적으로 높았다.
연구팀은 피나스테리드가 테스토스테론의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전환을 억제하는 과정에서, 기분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내 신경스테로이드(알로프레그난올론 등)의 생성까지 억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부 환자에게서는 복용을 중단한 뒤에도 증상이 지속되는 '포스트 피나스테리드 증후군(Post-Finasteride Syndrome, PFS)'이 보고된 사례도 있다. 연구팀은 "이 약물의 작용기전상 신경계 영향이 장기적으로 남을 수 있다"며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보고 누락·규제 사각 지대 지적
피나스테리드 관련 정신건강 부작용은 이미 2011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경고 문구로 추가됐으며, 2022년에는 '자살 위험' 항목이 새롭게 포함됐다.
그러나 실제 보고된 사례 수는 극히 적어, 규제당국의 안전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연구팀은 "보고 빈도가 낮다는 이유로 위험성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며 보다 투명한 부작용 보고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올해 5월 유럽의약품청(EMA) 역시 피나스테리드 1mg 제품(남성형 탈모 치료용)에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 경고 문구를 의무화하며 제조사에 라벨 변경을 지시했다. EMA는 복용 초기에 우울감이나 불안, 자살 충동이 나타날 경우 즉시 약 복용을 중단하고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이러한 부작용이 젊은 연령층에서 집중적으로 보고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의료진에게는 환자의 정신건강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도록 권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피나스테리드의 정신건강 관련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이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복용 전 충분한 상담과 복용 중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