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약 200만 년 전 인류의 조상 호모 하빌리스(Homo habilis)는 석기를 다룬 최초의 인류로 알려져 왔다. 오랫동안 '사냥하는 인간'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는 이들이 오히려 포식자의 먹잇감이었음을 보여준다.
스페인 알카라대학교(University of Alcalá) 연구팀은 동아프리카 탄자니아 올도바이 계곡에서 발굴된 호모 하빌리스 화석 두 점을 정밀 분석했다. 컴퓨터 비전 기법을 적용한 결과, 뼈에 남은 자국은 표범(leopard)의 이빨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류가 생태계 정점에 오른 시점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늦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성과는 국제학술지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 9월호에 게재됐다.
◆ 표범의 먹잇감이 된 호모 하빌리스
연구팀이 주목한 화석은 약 185만 년 전 어린 개체 'OH 7'의 아래턱뼈와 약 180만 년 전 성체 개체 'OH 65'다. 두 화석에는 날카로운 치흔이 남아 있었지만, 그동안 어떤 동물이 남긴 것인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를 규명하기 위해 연구팀은 사자, 하이에나, 늑대, 악어, 표범 등 현대 포식자가 남긴 치흔 1,400여 장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분석 도구를 훈련시켰다. 이후 화석 표면과 비교한 결과, 두 사례 모두 표범이 남긴 흔적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삼각형 모양으로 움푹 팬 자국은 오늘날 표범의 사냥 흔적과 정확히 겹쳤다.
만약 호모 하빌리스가 다른 이유로 죽었다면, 뼈는 이후 하이에나 같은 동물에게 쉽게 부서졌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상태로 남은 치흔은 살아 있는 개체가 직접 공격당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호모 하빌리스가 표범의 사냥 대상이었음을 의미한다.
◆ 사냥꾼과 사냥감, 그 사이
연구팀은 "호모 하빌리스는 여전히 사냥감에 가까웠으며, 초기 호모 속 종들의 생태적 위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인류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맹수와 경쟁했다는 기존 통념에 중요한 의문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호모 하빌리스가 석기를 사용해 동물을 해체했다는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표범의 공격 자국은 이들이 사냥꾼이자 동시에 사냥감이었던 복합적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연구팀은 만약 죽은 뒤 하이에나 같은 동물에게 훼손됐다면 뼈가 심하게 부서졌을 것이라며, 현재의 치흔은 살아 있을 때 직접 포식자에 당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번 연구는 단 두 개체를 바탕으로 한 제한적인 분석이다. 그럼에도 인류 진화를 다시 바라볼 새로운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과거 화석 기록에서 간과되던 정보를 데이터 분석으로 추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앞으로 더 많은 사례를 분석해 인류가 사냥당하는 존재에서 사냥하는 존재로 변화해 온 과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발견은 인류가 먹이사슬 정점에 오르기까지, 생각보다 훨씬 긴 시간을 견뎌야 했음을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