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아타푸에르카의 그란 돌리나 동굴에서 고고학자들이 유골을 발굴하고 있다. 이 지역은 초기 인류의 식인 흔적이 다수 발견된 주요 유적지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PHES-CERCA
스페인 아타푸에르카의 그란 돌리나 동굴에서 고고학자들이 유골을 발굴하고 있다. 이 지역은 초기 인류의 식인 흔적이 다수 발견된 주요 유적지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PHES-CERCA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85만 년 전 고대 인류가 어린아이를 식량 자원으로 삼았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유골이 스페인에서 발견됐다. 목뼈를 정밀하게 절단한 흔적과 사람의 치아로 인한 씹은 자국이 남아 있는 이 유골은, 초기 인류 종인 호모 안테세서(Homo antecessor)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는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지역의 그란 돌리나(Gran Dolina) 동굴에서 진행됐으며, 7월 카탈루냐 인류고생태·사회진화연구소(IPHES-CERCA)가 공식 발표했다.

◆ 유아의 목뼈에서 확인된 정교한 절단 흔적

연구팀은 약 85만~77만 년 전 지층에서 호모 안테세서로 보이는 인골 10구를 발굴했다. 이 중 2~5세 유아의 척추뼈에서는 도구로 자른 듯한 뚜렷한 절단 자국이 발견됐으며, 이는 해부학적으로 머리를 분리하기에 정확한 위치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85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유아의 척추뼈. 도구로 자른 듯한 날카로운 절단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확대된 부분에서는 해부학적 정밀성을 갖춘 절개 자국이 확인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Maria D. Guillén / IPHES-CERCA
약 85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유아의 척추뼈. 도구로 자른 듯한 날카로운 절단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확대된 부분에서는 해부학적 정밀성을 갖춘 절개 자국이 확인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Maria D. Guillén / IPHES-CERCA

발굴 공동 책임자인 IPHES‑CERCA 소속 파르미라 사라디에(Palmira Saladié) 박사는 "이 절단 흔적은 아이가 다른 사냥감처럼 처리되었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라며, "뼈 표면에는 절단뿐 아니라 사람의 치아로 씹은 흔적도 남아 있어 실제로 섭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확인된 절단 흔적은 단순한 외상이 아닌,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정밀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라디에 박사는 "절단 부위는 머리를 몸에서 분리하기에 적절한 해부학적 위치였다"며, 이는 단순한 포식이 아닌 '계획적 해체'를 시사한다고 밝혔다.

또한 연구팀은 화석의 보존 상태가 매우 뛰어났으며, 단일한 절단 흔적뿐 아니라 살점을 벗겨낸 자국, 뼈의 골절, 사람의 치아로 인한 씹은 자국 등 복합적인 가공 흔적이 함께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증거는 해당 유해가 실제로 현장에서 소비되었음을 뒷받침한다.

연구팀이 발굴 현장에서 수습한 유골 조각을 들고 관찰하고 있는 모습. 어린아이의 뼈로 확인된 이 화석에는 절단 및 씹힌 자국이 함께 발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PHES-CERCA
연구팀이 발굴 현장에서 수습한 유골 조각을 들고 관찰하고 있는 모습. 어린아이의 뼈로 확인된 이 화석에는 절단 및 씹힌 자국이 함께 발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PHES-CERCA

◆ 반복된 식인의 흔적…생존과 사회적 의미 재조명

그란 돌리나 동굴에서는 지난 30여 년간 20구 이상의 인골에서 식인의 흔적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유아 유해가 이들 사례와 연속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으며,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된 문화적 행동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식인 행위의 목적에 대해 연구팀은 단순한 영양 보충뿐 아니라 사회적 요인도 함께 작용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사라디에 박사는 "이러한 행동은 집단 간의 영역 방어나 사회적 통제의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호모 안테세서는 1997년 그란 돌리나에서 처음 명명된 인류 종으로, 네안데르탈인이나 현생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인지, 혹은 별개의 계통에서 갈라진 종인지는 아직 논쟁 중이다. 하지만 이번 발견은 초기 인류가 단순히 사냥만이 아니라, 동족까지 생존 자원으로 고려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라디에 박사는 "매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고 있으며, 약 100만 년 전 사람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죽음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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