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콩고민주공화국 사롱가 국립공원에서 암컷 보노보 다섯 마리가 수컷 한 마리를 집단 공격하는 사건이 포착됐다. 연구팀은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손상된 흔적과 귀·발가락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처를 확인했다. 갈등을 성적 접촉으로 누그러뜨리는 '비폭력적 영장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기록이다.
이번 연구는 독일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가 수행했으며 국제학술지 'Current Biology'에 실렸다.
◆ 30분간 이어진 압도적 폭력
사건은 올해 2월 18일, 약 60마리 규모의 루이코탈레 보노보 공동체*를 관찰하던 중 발생했다. 현장을 기록한 연구자는 막스플랑크 동물행동연구소 박사후 연구원 소니아 파슈체프스카야(Sonia Paszczykowska)였다. 그는 이날 아침을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로 기억했다.
* 루이코탈레 보노보 공동체(LuiKotale Bonobo Community): 콩고민주공화국 루이코탈레 지역에서 장기간 관찰 중인 특정 보노보 집단
하지만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울린 날카로운 비명은 분위기를 단번에 바꿨다. 처음엔 작은 영양(duiker)을 붙잡았을 때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곧 주변 보노보들이 일제히 그 방향으로 달려갔고 연구팀도 뒤따라 이동했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짙게 퍼진 피 냄새였다. 암컷 보노보 다섯 마리는 19세 수컷 '휴고'를 바닥에 눕힌 채 발로 밟고, 때리고, 물어뜯고 있었다. 털은 대부분 뜯겨 있었고, 발가락과 귓바퀴 일부가 떨어져 있었으며, 손등의 조직도 뜯겨 있었다. 얼굴은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손상돼 있었고, 생식 기관에도 치명적인 상처가 남아 있었다.
파슈체프스카야 연구원은 당시 상황을 "보노보가 있는 숲이 이렇게 조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현장에는 다른 개체들도 있었지만 개입하려는 이는 없었다. 공격은 약 30분간 이어졌고, 끝난 뒤 일부 암컷은 손에 묻은 피를 핥는 모습도 관찰됐다.
◆ '영아 위협'이 부른 연대…'평화'의 이면 드러나
이번 사건을 이해하는 핵심 단서는 이틀 전의 관찰이다. 당시 연구팀은 휴고가 공격에 가담했던 암컷의 영아를 잡아당기려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노보 사회에서 영아는 가장 강하게 보호되는 존재로, 이에 대한 위협은 암컷 간 연대를 즉각적으로 촉발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유사한 선례 역시 영아 살해 시도 이후 벌어진 집단적 응징 사례 하나뿐이다. 연구팀은 이번 공격도 휴고의 위협적 행동이 누적된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파슈체프스카야 연구원은 "이틀 전 사건은 하나의 조각일 뿐이지만, 비슷한 행동이 반복됐다면 충분한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휴고는 공격 직후 숲속으로 몸을 끌고 사라졌으며 이후 공동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연구팀은 사망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다만 일본 주오대(Chuo University) 보노보 연구자 도쿠야마 나오코 교수는 "몇 달 동안 자취를 감춘 뒤 다시 공동체로 돌아온 수컷을 본 적이 있다"며 성급한 판단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노보는 성적 교류를 통해 갈등을 완화하고 침팬지보다 공격성이 낮아 '평화의 상징'으로 불려 왔다. 먹이 위치를 인간에게 공유하는 행동 등이 소개되며 인지 능력에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보노보 사회의 중심에는 암컷 연대가 있다. 암컷들은 협력해 수컷의 공격성을 억제하며, 이러한 구조가 치명적 폭력과 영아 살해가 드문 이유로 설명돼 왔다. 이번 사건은 그 연대가 극단의 형태로 드러난 사례로, 보노보 사회의 권력 질서를 다시 보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