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해성 판단' 폐기 초안, 과학·법 무시 논란…美 산업·국제사회 파장 불가피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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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온실가스 규제의 법적·과학적 근거인 ‘위해성 판단(Endangerment Finding)’의 폐기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의 전반적인 기후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로이터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2009년 오바마 행정부 당시 발표된 위해성 판단을 공식 폐기하는 작업을 백악관과 조율 중이다. 

특히 이 ‘위해성 판단’은 단순한 과학적 선언을 넘어, EPA가 청정대기법(Clean Air Act)에 따라 이산화탄소와 메탄 등 온실가스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하는 핵심 고리였다. 이 판단이 철회될 경우, 미국 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모든 연방 차원의 노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것으로 전망된다.

EPA의 초안에는 조 바이든 전 행정부가 강화한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 폐지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조였던 ‘탈탄소 역행’ 전략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 "대법원 판결도 무시?"...위험천만한 '행정 독주' 논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2007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매사추세츠 대 EPA’ 판결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 대법원은 온실가스를 청정대기법상 규제 대상인 '대기 오염 물질'로 명확히 규정하며 EPA에 규제 의무를 부여했다. 만약 EPA가 위해성 판단을 폐기한다면, 이는 대법원 판례를 사실상 무시하고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뒤집으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어 즉각적인 소송전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시된다.

실제로 환경단체들은 "트럼프 행정부는 과학과 법을 모두 무시하고 기후위기 대응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으며, 이미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프 고프먼 전 EPA 국장은 "만약 해당 초안이 최종 확정되면, 즉각적인 헌법 소송이 제기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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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 대변인은 해당 제안이 지난 6월 30일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에 검토 요청됐으며, 현재 연방정부 내 다른 기관들의 심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메일 성명을 통해 "제안서는 기관 간 검토를 마친 후, EPA 청장의 서명을 거쳐 일반에 공지되고 의견 수렴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 친환경 산업 '찬물', 글로벌 경쟁력까지 위협

이번 EPA 초안에는 전기차 확대를 목표로 했던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을 되돌리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히 환경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 경제 전반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 제조업 부흥의 핵심 동력이었던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자동차 배출가스 기준이 완화되면, 내연기관차 생산을 지속하는 데 대한 부담이 줄어들어 국내외 완성차 기업들이 전기차 전환에 대한 투자를 늦출 수 있다. 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녹색 산업 투자 계획을 위축시키고, 일자리 창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이에 대해 "환경 규제 완화가 단기적 비용 절감으로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산업 경쟁력과 환경 안전을 해칠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내 기후 대응 역량이 약화하면, 글로벌 탄소중립 경쟁에서도 뒤처지고 국제 무역에서도 불리한 위치에 놓일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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