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플라시보 효과란 생리학적 효과가 없는 위약(가짜약)을 복용함으로써 증상의 개선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 레스터대학 제레미 하윅 교수는 비영리 학술매체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위약뿐만 아니라 '가짜 수술(sham surgery)'도 환부 통증 경감 등 실제 수술과 같은 효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의자에서 일어서기 힘들 정도의 무릎 통증을 겪는 환자 180명을 '실제 관절경시하 수술을 받는 그룹'과 '가짜 관절경시하 수술을 받는 그룹'으로 무작위 배정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는 진통제가 투여되고, 작은 금속 튜브(관절경)를 무릎에 삽입해 손상된 연골의 복구와 통증의 원인인 뼛조각 제거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반면,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는 마찬가지로 진통제가 투여되고 무릎에 금속 튜브가 들어갈 정도의 작은 절개가 이루어졌지만, 튜브 삽입·연골 복구, 뼛조각 제거와 같은 실제 치료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가짜 수술 역시 집도의나 간호사가 일반적인 수술과 유사한 소리를 냈고 환자는 진짜 수술이 이뤄졌다고 믿었다.
이후 연구팀은 2년에 걸쳐 환자를 추적해 환자의 자가 신고 형태로 통증 및 기능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정기적으로 조사했다. 또 통증의 영향을 받기 전에 몇 계단을 오를 수 있었는지 등을 파악해 실제 수술과 가짜 수술이 환자에게 초래한 영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가짜 수술을 받은 환자는 통증 경감 및 기능 개선 부분에서 실제 수술을 받은 환자와 같은 정도의 효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이후 실험에서도 재현성이 확인되었다. 이는 가짜 수술이 실제 수술만큼 유효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가짜 수술의 효과를 조사한 53건의 시험을 검토한 다른 분석 연구에서는 53건 중 39건(74%)에서 가짜 수술이 환자의 증상을 개선했고, 27건(51%)에서는 가짜 수술이 실제 수술과 같은 정도의 개선을 가져온 것으로 보고됐다.
이 연구에서 검토한 가짜 수술에는 ▲등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시행하는 의료용 골시멘트 주입 ▲편두통 발작을 줄이기 위한 뇌 임플란트 이식 ▲소화관 출혈을 막기 위한 레이저 수술 ▲괄약근 기능 개선 수술 등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러한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가짜 수술이 실제 수술을 널리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매년 100만 건 이상의 무릎 관절경시하 수술이 이루어진다.
그 이유에 대해 하윅 교수는 "가짜 수술은 매우 위험하다고 잘못 인식되고 있으며, '가짜 수술(sham surgery)'이라는 명칭 자체도 나쁜 인상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가짜 수술은 환자가 실제 수술로 믿게끔 반드시 속여야 한다고 오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실 가짜 수술은 환부에 직접 닿지 않기 때문에 수술에 의한 침습성이 비교적 적고 감염병 등 유해 위험이 낮다는 장점이 있다. 또 많은 시험에서 가짜 수술의 진행을 환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여전히 명확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하윅 교수는 가짜 수술이 증상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에 대해 "육체가 베인 상처를 재생하는 과정(wound-healing cascade)을 활성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체는 다양한 부상을 자연 치유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외과 의사의 절개만으로 창상 치유가 시작된다. 이를 통해 혈전이 출혈을 멈추고 백혈구가 해로운 세균을 제거하고 새로운 조직과 혈관이 형성되며, 환부에 영양이 전달돼 상처가 아물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무릎·어깨·등 등의 환부 구조를 변화시켜 통증 경감이나 기능 개선과 같은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하윅 교수는 "가짜 수술은 '저침습 수술'이라고 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수술 형태가 침습적이고 비싸며 위험한 수술과 동일 효과를 발휘하는 환자에게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또 환자는 저침습 수술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설명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