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연구팀, 로드킬 당한 동물 털 분석으로 생물형광 물질 정밀 확인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호주 도로 위 동물 털을 면도했더니… 놀랍게도 포유류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호주 제임스쿡대학교 린다 라인홀트 연구팀은 길에서 발견된 동물 사체의 털에서 형광 물질의 화학 성분을 정밀 분석했다. 그 결과, 자외선을 비췄을 때 털이 형광을 띠는 포유류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에 발표됐다.
지금까지 형광을 띠는 동물로는 카멜레온, 물고기, 바다거북, 개구리 등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박제된 오리너구리에 자외선을 비추자 강렬한 빛이 방출되었고, 이후 웜뱃, 나무캥거루 등 일부 호주 포유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관찰되면서 이들의 털에 특별한 형광 특성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재까지 확인된 형광 포유류는 125종을 넘어선다.
연구팀은 이 놀라운 현상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고성능 액체 크로마토그래피(HPLC)와 전기 분무 이온화 질량 분석법(ESI-MS)이라는 첨단 분석 장비를 동원했다. 살아있는 동물의 털을 채취하는 대신, 도로에서 수거한 동물들의 털을 분석에 활용하여 표본 손상 없이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다.
◆ 오리너구리부터 나무캥거루까지… 털 속 숨겨진 형광 물질 추적
연구 대상은 다채로운 색깔(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흰색 등)로 빛을 내는 북부 롱노즈밴디쿳, 북부 브라운밴디쿳을 비롯해 북부쿠올, 쿠퍼색 브러시테일포섬, 럼홀츠 나무캥거루, 필드랫, 그리고 오리너구리까지 총 7종이었다.
이들의 털을 정밀 분석한 결과, 모든 종에서 공통적으로 '프로토포르피린(protoporphyrin)'이라는 형광 물질이 발견되었다. 흥미롭게도, 각 개체별로는 프로토포르피린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형광 물질(루미노포어)이 추가로 존재했다. 연구진은 두 종류의 밴디쿳에서 '유로포르피린(uroporphyrin)'과 '헵타카복실포르피린(heptacarboxylporphyrin)'을, 쿠올과 밴디쿳에서는 '코프로포르피린(coproporphyrin)'을 추가로 확인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중 일부 성분이 과거 다른 포유류 털에서 발견된 트립토판 대사물과 유사한 분자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단순히 여러 성분이 무작위로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포유류 털에 특정한 빛 반응 경로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 형광 현상이 진화적으로 중요한 생존 전략인지, 아니면 단순한 생물학적 부산물인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어둠 속 동료를 알아볼 신호? 진화적 기능은 미스터리
과학자들은 이 형광 현상이 주로 해 질 녘이나 새벽에 활동하는 동물들이 서로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추측한다.
어두운 환경 속에서 동료를 쉽게 구별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생존에 불리하지 않다면 자연 선택 과정에서 굳이 사라지지 않았을 뿐이라는 단순한 해석도 존재한다.
라인홀트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호주 포유류 털에서 발견된 포토루미네선스(빛을 흡수했다가 다시 방출하는 현상)의 형광 물질에 대한 최초의 화학적 분석"이라며, "이는 약 50년 전 포유류 털에서 두 가지 트립토판 대사물이 확인된 이후 처음 있는 획기적인 발견"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형광을 띠는 포유류가 어떻게 빛을 흡수하고 다시 내보내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첫걸음을 내딛었으며, 더 나아가 포유류의 진화 과정과 신경생물학적 특징 사이의 숨겨진 연결고리를 밝히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