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실험, 대기오염 절반 줄인 '사람 중심' 전략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차 대신 자전거." 표어처럼 들릴 수 있는 이 말은, 파리에서는 20년 넘게 지속된 정책이자 도시 전체를 바꿔놓은 전략이다. 이제 파리의 공기는 말 그대로 달라졌다.

이는 단순히 교통수단을 바꾼 이야기가 아니다. 도시 구조를 뜯어고치고, 시민의 생활 방식과 건강, 나아가 기후 정책의 방향까지 연결한 '총체적 전환'의 결과다. 파리는 스스로를 실험실로 삼아 오랜 시간 도시 정책의 가능성을 검증해왔다.

◆ 차량 없는 거리, 숨 쉬는 도시

프랑스 대기질 감시기관 에어파리프(Airparif)의 2024년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 수도권의 초미세먼지(PM2.5) 농도는 2005년 대비 55% 감소했고, 이산화질소(NO₂)는 50%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오염 지도로 본다면, 2007년 붉게 물들었던 파리 도심은 2023년 기준 대부분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도시의 '숨결'이 달라진 것이다.

2007년, 2014년, 2023년 파리의 평균 PM2.5 농도 지도. 붉은색은 고농도, 푸른색은 저농도를 나타내며,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 양상이 뚜렷하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irparif
2007년, 2014년, 2023년 파리의 평균 PM2.5 농도 지도. 붉은색은 고농도, 푸른색은 저농도를 나타내며, 시간이 흐를수록 개선 양상이 뚜렷하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irparif

이 변화의 중심에는 2014년부터 파리를 이끌고 있는 안느 이달고(Anne Hidalgo) 시장의 교통 개혁이 있다. 파리시는 차량 통행을 줄이는 동시에 자전거 도로를 확대하고, 도심의 주차 공간을 녹지로 전환하는 구조 개혁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2022~2023년 기준 파리 시내의 주요 이동 수단 중 자전거 비율은 11.2%로, 자동차(4.3%)보다 높게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대기질 개선은 도시 정책이 시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보도했다.

◆ 불편함을 넘어선 시민의 선택

물론 처음부터 순조롭지는 않았다. 차량 제한 정책이 시행되자 일부 통근자들과 자동차 이용자들은 불편을 호소했고,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시민의 삶에 녹아들었다. 2025년 3월, 파리 시민들은 시내 500개 도로를 추가로 보행자 전용으로 바꾸는 안건에 대해 직접 투표에 나섰고, 찬성이 우세했다. 1년 전 도입된 SUV 주차요금 3배 인상안도 정착되며, 센 강변 도로와 리볼리 거리(Rue de Rivoli) 등 주요 도로는 이제 차량 없는 거리로 바뀌었다.

논란은 있었지만, 변화의 속도는 거꾸로 시민의 신뢰를 얻었다. "불편하더라도 가야 할 길이었다"는 공감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 정책을 넘어 건강까지 바꾼 실험

도시의 변화는 과학적으로도 확인됐다. 국제학술지 《Atmospheric Chemistry and Physics》(2025년 3월호)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프랑스 연구팀은 파리 전역의 이산화질소와 블랙카본 농도를 거리 단위로 정밀 분석했다.

2007년부터 2024년까지 파리의 이산화질소(NO₂) 농도 변화. 주요 도로 주변의 고농도 지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녹색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irparif
2007년부터 2024년까지 파리의 이산화질소(NO₂) 농도 변화. 주요 도로 주변의 고농도 지역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녹색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irparif

Airparif의 교통 배출량 데이터와 인구 밀도를 결합한 결과, 교통량이 많은 도로 인근에서는 대기오염 물질의 농도가 평균보다 20~30% 높게 나타났고, 차량 통행량이 줄어든 지역에서는 확연한 감소 추세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도시 대기질 관리는 구역 단위가 아닌 거리 단위로 접근해야 더 실질적인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파리의 대기질 개선은 단순한 숫자 이상이다. 초미세먼지(PM2.5)와 이산화질소(NO₂)의 눈에 띄는 감소는, 차량 감축과 오염차량 규제, 녹지 확충 등 다층적 전략의 성과다.

대기오염은 심혈관 질환, 호흡기 질환, 조기사망 등과 직접 연관된 만큼, 이러한 개선은 시민 건강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파리는 교통정책이 곧 건강정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라고 평가한다.

파리는 현재 시내 500개 이상의 도로에서 차량 진입을 금지하고 있으며,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를 위한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 재설계를 진행 중이다. 파리시 지속가능 전략 자문을 맡은 카를로스 모레노(Carlos Moreno) 준교수는 "우리는 도로를 위한 도시에서, 사람을 위한 도시로 전환했다"며 "이 변화는 삶의 방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파리는 행복 기반 도시 전략의 대표적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도시의 공기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파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일관된 철학과 실행으로 그 어려운 길을 걸어왔다. 이 변화는 하나의 도시를 넘어, 미래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살아 있는 예시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