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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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사람 유전자의 약 8%는 인류 조상에게 감염된 바이러스의 잔재인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endogenous retrovirus, ERV)'로, 여전히 인류에게 여러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가 현대의 암 발생과 악화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콜로라도볼더대(University of Colorado Boulder) 바이오프론티어연구소의 에드워드 쯔엉(Edward Chuong) 박사 연구팀은 이번 논문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Science Adv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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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속에 남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는 새롭게 바이러스를 만들 능력은 없지만, 주변 유전자의 발현 스위치로서의 기능을 가진다. 그중에는 태반 발달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반응 등 인류에게 중요한 기능에 관여하는 것도 있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의 장점과 관련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다.  

이에 연구팀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전세계 사망 원인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공개된 데이터 세트에서 21종의 암 유전체 데이터를 추출해 분석했다. 

그 결과, 약 3000만 년 전 일부 영장류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남긴 유전자인 'LTR10'이 폐암과 대장암을 포함한 여러 암에서 놀라울 정도로 높은 수준의 활성을 보인 것을 발견했다. 대장암 환자의 종양을 분석했더니 환자 3분의 1에서 LTR10이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기술 CRISPR와 배양 암세포를 이용해 문제의 유전자 배열 절제와 유전자 침묵(gene silencing·유전자 스위치를 끄는 것)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암 발생 및 성장 촉진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함께 사라졌다. 

쥐를 이용한 동물 실험에서는 암세포에서 LTR10을 제거하면 암세포 생존과 관련된 유전자인 'XRCC4'도 같이 꺼졌고, 이를 통해 종양을 축소해 암 치료효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암세포에는 'MAP 키나아제(MAP kinase) 경로'라고 불리는 세포 내 시스템이 늘 켜져 있어, 그 기능을 저해하는 암 치료제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연구팀은 암 치료제가 효과를 보이는 것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온(ON)으로 작동시킨 스위치를 암 치료제가 다시 오프(OFF)로 끄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암세포에는 정상적이라면 활성화되지 않아야 할 유전자가 다수 발현되는데 이러한 유전자가 왜 활성화되는지는 그동안 불분명했다. 

쯔엉 박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암세포를 일으키는 스위치 대부분에 고대 바이러스가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강조했다. 

에드워드 쯔엉 박사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CU Boulder
에드워드 쯔엉 박사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CU Boulder

고대 바이러스와 암의 연관성을 시사하는 연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독성이 있는 화합물을 방출하거나 유전자 변이에 관여한다는 사실이 보고된 바 있으며, 바이러스가 백혈병이나 전립선암의 세포 경로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시사하는 연구도 발표되었다.  

연구팀은 "우리의 연구로 고대 바이러스가 암에 미치는 새로운 영향을 알 수 있었지만, 이는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직접적으로 암을 일으킨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암세포가 잠든 바이러스를 깨워 스스로의 생존력을 높이는 데 이용하거나, 세포 노화로 유전체 복구 기능이 떨어졌을 때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나 다른 건강 문제를 활성화시키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고 설명했다. 

쯔엉 박사는 "병이 어떻게 세포 안에서 발현되는지에 대한 기원은 늘 미스터리였다.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가 모든 원흉은 아니지만, 그 대부분을 차지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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