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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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하늘이 가려지면, 밥상도 비게 된다"는 경고가 과학 시뮬레이션으로 다시 확인됐다. 핵전쟁 뒤 찾아올 수 있는 '핵겨울(nuclear winter)'이 전 세계 식량 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연구팀은 지역 분쟁 규모에서도 곡물 생산이 눈에 띄게 줄고, 최악의 전면전 시나리오에서는 생산 회복에 최소 7년에서 최대 12년이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옥수수는 대규모 핵전쟁 시 기후 변화와 자외선 충격이 겹치면 최대 87%까지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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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사라지면 농사도 멈춘다

연구팀은 대기 상층에 퍼질 그을음(블랙 카본) 양을 550만~1억6,500만 톤으로 가정해 6가지 핵전쟁 시나리오를 설계하고, 전 세계 3만8,572개 지점에서 작황 변화를 계산했다. 그 결과 지역 규모의 분쟁만으로도 글로벌 옥수수 생산이 약 7% 감소했고, 전면전에서는 햇빛 차단·기온 하강·강수 변화가 겹치며 생산량이 80%까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겨울 강도·지역·연도별 옥수수 생산 변화율 추정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2025)
핵겨울 강도·지역·연도별 옥수수 생산 변화율 추정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Environmental Research Letters(2025)

핵폭발이 생성한 질소산화물과 그을음의 성층권 가열 효과는 오존층을 훼손해 지표면 UV-B를 수년간 높일 수 있다. 분석에 따르면 전면전 이후 6~8년 사이 UV-B 영향이 정점에 달해 옥수수의 광합성과 조직을 추가로 손상시키고, 최종 손실을 최악의 경우 87%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충격은 북반구 고위도에서 오래 지속되며, 적도와 남반구는 회복이 빠르지만 세계 교역망을 통해 식량 파장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옥수수에 초점을 맞췄지만, 핵심 변수인 햇빛 차단·한랭화·강수 감소·오존층 손상은 다른 주요 작물에도 비슷한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국제학술지 '네이처 푸드(Nature Food)'는 미·러 간 전면 핵전쟁 시 직접 사망자 3억6천만 명, 기아로 인한 간접 사망자 50억 명 이상을 추정한 바 있다. 이는 농업 붕괴가 인류 생존과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위기를 늦추는 '농업 회복 키트'

연구팀은 핵겨울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단기 생장·저광량 적응 품종으로의 신속한 전환이 농업 손실을 일부 완화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시뮬레이션상 품종 전환만으로도 손실을 최대 10%포인트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종자 공급망이 붕괴할 수 있어, 사전에 지역별 기후에 맞춘 종자 묶음을 비축하는 '농업 회복 키트(agricultural resilience kits)' 개념도 함께 제시됐다. 이 회복 키트는 기후·토양 조건이 다른 권역별로 맞춤 종자와 재배 지침을 묶어두는 대비책으로, 화산 대분출 등 다른 기후 재난에도 적용 가능한 보편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연구팀은 그러나 이러한 적응은 피해를 늦추는 수준에 불과하며, 근본 해법은 핵전쟁 자체를 막는 외교·안보 체계라는 점을 지적했다.

연구팀의 이닝 시(Yuning Shi)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이번 결과는 핵전쟁이 남기는 상흔이 전장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점을 수치로 보여준다"며 "작물 재배와 식량 공급망이 장기 마비되면 인류는 기후·경제·안보 전반에 걸친 장기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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