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부터 물줄기까지… 커피 한 잔에 담긴 유체역학의 정수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드립식 커피는 그 풍미와 향으로 많은 애호가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드립 커피는 뜨거운 물을 커피 가루 위에 천천히 붓고 필터를 통해 추출하는 방식이다. 커피의 맛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간단한 기구만 있으면 가정에서도 쉽게 즐길 수 있어 최근 몇 년 사이 더욱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커피 맛을 좌우하는 '추출' 과정은 단순히 뜨거운 물을 커피 가루에 붓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다. 추출의 물리적 조건, 특히 '물의 높이'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연구팀은 드립 커피 추출 과정에서 ▲물의 주입 높이 ▲물줄기 두께 ▲흐름 속도 등이 커피의 맛과 추출 효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험을 통해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유체 물리학(Physics of Fluids)'에 실렸다.
◆ 황금 높이는 30cm… 물줄기 하나로 풍미 달라져
연구팀은 투명한 깔때기에 실리카 젤 입자를 채워 커피 가루를 모사하고, 고속 카메라와 레이저 기술을 이용해 물이 입자들과 어떻게 섞이는지를 시각적으로 관찰했다. 이 과정에서 물이 얼마나 잘 섞이는지, 즉 추출 효율은 물줄기의 낙하 높이에 따라 현저히 달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실험에 따르면 약 30cm 높이에서 물을 떨어뜨렸을 때 가장 이상적인 추출 효과가 나타났다. 이 높이에서는 물줄기가 안정적으로 흐르며 커피 가루와 고르게 섞여 풍미가 잘 살아난다. 반면 50cm 이상의 높이에서는 물줄기가 분리되어 추출 효율이 크게 떨어졌으며, 너무 낮은 위치에서 물을 붓거나 흐름 속도가 느릴 경우에도 효과적인 혼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추출 후 얻어진 액체에 포함된 총 용해 고형물(TDS, Total Dissolved Solids)의 농도 분석을 통해, 추출 높이와 흐름 조건에 따라 커피의 진함과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정량적으로 입증되었다.
◆ 물줄기의 '두께'도 중요… 구스넥 주전자가 좋은 이유
연구팀은 물의 낙하 높이뿐 아니라, 물줄기의 두께와 흐름의 연속성도 중요한 변수라고 밝혔다. 물줄기가 너무 가늘면 흐름이 끊기기 쉬워 커피 가루와 잘 섞이지 않고, 그로 인해 추출 효율이 떨어진다.
마르고트 영(Margot Young) 연구원은 "물이 너무 가늘어지면 흐름이 깨지고, 커피 가루와 효과적으로 혼합되지 않는다"며 "물을 일정한 속도와 높이에서 붓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전문 바리스타들이 애용하는 구스넥 주전자*는 물줄기를 두껍고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어 이상적인 도구로 꼽힌다. 특히 일정한 속도와 안정적인 낙하 높이를 유지할 수 있어 가정에서도 비교적 쉽게 균일한 추출을 재현할 수 있다.
*구스넥 주전자는 입구가 길고 구부러진 형태로 되어 있어 물줄기를 얇고 일정하게 조절할 수 있는 드립 전용 주전자다. 손목의 각도나 속도를 조절하기 쉬워 정밀한 추출이 가능하다.
IT·과학 전문 매체 아스 테크니카(Ars technica) 보도에 따르면, 이러한 최적의 추출법은 커피 원두의 사용량을 줄이면서도 기존보다 더 깊은 풍미를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더 적은 원두로도 더 맛있는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과학적인 절약법'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