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8년 전 이세돌 9단과 구글의 AI 알파고의 역사적 대국은 '인간 대 AI'의 대결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인간 대 AI의 두뇌 대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고 2019년 은퇴한 이세돌 프로는 은퇴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로 알파고와의 대국을 꼽기도 했다.
알파고의 탄생 이후, 바둑 기사의 수준은 극적으로 향상했다.
스웨덴 작가 헨릭 칼슨(Per-Henrik Karlsson)이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공개된 논문 등을 인용해 소개한 자료에 따르면 AI가 등장하기 이전인 1950년대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바둑 프로기사들은 실력 향상의 한계에 달했다.
아래 그래프는 당시 프로기사가 대국 중에 던지는 수(手)의 질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 등장 몇 년 후에는 실력이 월등하지 않은 프로기사라도 AI 등장 전의 최고 수준의 기사에 필적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한 수를 두는 실력으로 성장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2010년대 중반부터 프로기사가 두는 수의 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홍콩성시대 연구팀은 "AI의 등장으로 프로기사의 수준은 향상되고 있지만, 분석 결과 'AI 연구'가 이러한 성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0% 정도에 머문다"고 밝혔다. 이는 AI 등장 후 프로기사가 기계적으로 AI가 두는 수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바둑 기보를 배우고 익혀 더 창의적으로 변하고 성장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일이 가능해지는 사례는 바둑뿐만이 아니다. 전설의 육상선수 로저 배니스터가 인류 최초로 1마일(약 1.6km) 4분 벽을 깨자 다른 선수들도 줄줄이 3분대에 돌파했다.
또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출신의 지휘자 겸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1925~2016년)의 곡은 지나치게 어렵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유튜브에 연주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유행해 현대에는 콘서트의 단골 레퍼토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프로기사의 수준 향상은 AI 시스템의 등장이 이러한 효과를 가져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긍정적인 의미로 보자면 인간의 가능성을 넓히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줄 수 있다.
칼슨은 "인간이 가진 가능성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다. 체스나 바둑과 같은 경쟁이 치열한 영역에서조차 인간의 퍼포먼스는 가능성의 한계를 훨씬 밑돌 수 있다. 아마 AI는 더 많은 영역에서 한계를 넘어서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한편, 구글은 지난 3월 '이세돌이 전하는 알파고와의 대결 그 순간, 그리고 AI'라는 제목의 인터뷰 영상을 공개한 바 있다.
이 인터뷰에서 이세돌 프로는 "기보는 알파고 출시 전후로 완전 달라졌다"며 "AI를 벌써부터 두려워하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두려움을 느끼던 느끼지 않던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