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바이러스] #2.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치명적 돌연변이 '진행형'
[세기의 바이러스] #2. 최초의 팬데믹 '스페인 독감'…치명적 돌연변이 '진행형'
  • 장서연 기자
  • 승인 2021.04.27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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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고 소리 없이' 인류의 일상에 스며드는 최악의 바이러스
ⓒ데일리포스트 = 이미지 제공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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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장서연 기자] "9월에 이미 서울에 환자가 나타났고 10월에 전국적인 유행이 절정에 달해 공사립학교와 사숙은 휴학, 각 관청과 단체에서는 시무를 보지 못했다. 11월 들어서는 개성군의 경우 다른 때의 7배의 사망률을 보였고, 충남 서산지역은 8만 명의 인구 중 6만4000명이 질병에 걸렸으며 매일 100명 이상 150명씩 사망하여 사망자를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 일반 농가에서는 사람이 없어 추수를 못한 논이 절반 이상이다." (조선총독부 연감)

통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당시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5억명을 감염시키고 5000만명~1억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인류 역사 최악의 전염병으로 불린다.

'스페인 독감' 혹은 '1918년 인플루엔자 팬데믹(대유행)', 조선에서는 '무오년 독감'으로 불렸던 인플루엔자A바이러스(H1N1)는 현재 유행중인 코로나19와 비교되면서 언급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은 1세기 전인 1918년 발병해 1920년까지 세계를 휩쓸었다. 증상은 인후통, 두통, 열과 같은 전형적인 독감 증상으로 처음에는 사망자 수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2차 유행이 시작될 즈음엔 증상이 세균성 페렴으로 이어지면서 환자의 피부가 검게 변하고, 수시간~며칠 내 사망하는 등 한층 심각해졌다.

특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대개 2세 이하의 영아들이나 65세 이상의 노인들과 같이 면역력이 떨어지는 노약자들의 사망률이 높은 편이지만, 스페인 독감은 20~30대의 젊은층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전문가들은 1차와 2차 유행의 증상이 크게 달라진 이유가 돌연변이 바이러스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장병들이 세계 각국으로 일사불란하게 이동하면서 전파력이 커졌고, 그것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생긴 돌연변이 중에 이 같은 증상을 초래하는 변이형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식민통치를 받고 있던 조선에서도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면서 약 14만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관련 기록들에서는 감염 확산세가 크고 사망자가 많아서 사망자 처리가 문제가 될 지경이고, 농업과 우체국 운영과 같은 일들에 지장이 있었다고 전했다.

감염자들은 분리시키고, 접촉을 자제하게 하고, 볕을 쏘여 소독하고, 환기를 하는 등 방역을 위한 지침을 정하고 장려했다.

ⓒ데일리포스트 = 이미지 제공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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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스페인 독감인가?

스페인 독감의 시작은 명확하지 않다. 다만, 남아있는 관련 진료기록들과 바이러스의 계통 발생학적 분석 등을 종합해 보면, 미국에서 유래해 지역감염으로 번졌고, 미국이 세계대전에 참전하면서 미군들에 의해 유럽으로 퍼져간 것으로 보는 설명이 유력하다.

스페인 독감으로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세계대전에 참전 중이던 다른 나라들은 적국에 내부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우려해 전시검열로 인플루엔자 유행을 숨긴 데 비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에서 이 전염병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면서 스페인에서의 인플루엔자 유행이 두드러지게 되면서 '스페인 독감'이라고 알려지게 됐다.

전쟁으로 인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진 집단생활, 그리고 대륙에 걸친 장거리 병력 이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전선을 맞대고 싸우고 있던 프랑스·독일·영국 같은 나라에선 수백만 명씩 환자가 쏟아졌다.

병사자 수는 곧 전투에서 죽은 사람 수를 뛰어넘었고, 스페인에선 아예 국왕을 필두로 공무원이 대거 감염되어 국가 체제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남태평양의 섬들 할 것 없이 환자가 속출했다. 

스페인 독감은 근대적인 방역체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이후에 기록된 최초의 팬데믹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당시의 방역 대책은 오늘날과 유사한 점도 많다.

해외 여러 국가에선 방역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개념이 도입되어 학교나 공연, 종교 모임, 대규모 모임 등을 금지시키고, 대중교통 이용에 제한을 두는 것과 같은 시행령이 실시됐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일터에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고, 영화관·극장 같은 장소는 폐쇄됐다. 심지어 마스크 미 착용자에게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미국과 일본과 같은 곳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진들은 지금도 남아있는 자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당시에도 마스크가 방역효과가 있는지는 논란의 대상이 됐다.

최대 2억 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흑사병보다는 피해가 덜하지만 전염병으로서의 위력은 스페인 독감이 앞선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여기에 흑사병이 창궐했던 14세기 보다 공중 보건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이 있었던 20세기였기에 차이가 컸다는 이유를 들었다.

ⓒ데일리포스트 = 이미지 제공 / 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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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독감은 언제 종식됐나?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스페인 독감의 기세는 1920년에 접어서야 수그러들었다.

당시엔 바이러스를 직접 관찰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았지만 전자현미경이 발명된 1933년 이후부터 과학자들의 끈질긴 연구로 알래스카의 얼음 아래에 파묻혀 있던 희생자의 폐 조직에서 얻어낸 바이러스를 현대적인 기술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한 세기가 지난 2005년에 와서 그 재앙적 바이러스가 H1N1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였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수천 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유행이 갑작스레 멈춘 이유는 기원과 마찬가지로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지만 타미플루도 없던 시절인 만큼 엄청난 감염자와 사망자 발생이 종식 원인으로 꼽힌다.

대규모 감염과 사망에 따른 집단면역이 스페인 독감 종식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면역력을 갖게 되고,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축적해가면서 맹독성이 사라지고 서서히 소멸해 가게 되었을 거라고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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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식된 것은 스페인 독감이었을 뿐, 스페인 독감의 변종은 H1N1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도 현대 사회에 남아있다.

2009년 6월 전세계 600만 명을 감염시키며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 상황을 선언해야 했던 신종플루 H1N1의 유행은 바로 이 바이러스의 후손에 의한 것이었다. 

2007년 2월 '사이언스지'에 실린 논문에 의하면 스페인 독감에 생긴 단 두개의 아미노산 변이가 혈구응집소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부위에 변화를 일으켜, 사람에게서 전이되던 것에서 조류에게서만 전이되는 성질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미미해 보이는 돌연변이로 바이러스의 성격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 같은 미미한 변이들로 다른 동물들에게서 번지던 바이러스들이 언제든지 인간에게로 옮겨와 유행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엄청난 사망자수를 기록하고 백신 없이 종식된 '스페인 독감'이지만 새로운 형태로 언제든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될 수 있다. 코로나19 종식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여기에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도 변종이 발생한 만큼 스페인 독감과 마찬가지로 우리 일상에 스며들어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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