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당시 백신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19세기 당시 백신은 어떻게 운반했을까?
  • 김정은 기자
  • 승인 2021.01.0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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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wellcome images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백신은 감염 예방을 위한 약독화·무독화 항원 투여로 면역을 생기게 하는 구조로, 그 역사는 18세기 말에 발견된 종두(천연두 백신)로 거슬러 올라간다. 교통망과 운송 시설이 미흡했던 19세기 인류는 어떻게 백신을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일까? 

2020년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당국의 승인을 받은 국가로 즉시 전달됐다. -20도(모더나)와 –70도(화이자)의 극저온 수송·보관이 필요한 코로나19 백신 운송을 위해 항공사는 대형 냉장시설 및 액체 질소를 이용한 다층구조 냉장 용기 등 새로운 운송 설비를 도입했다.

지금은 항공기 등을 이용한 고속 교통망과 저온 저장 기술의 발달로 백신을 세계 각지로 수송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종두가 개발된 18세기 말~19세기에는 백신 수송은 큰 과제였다.

◆ 종두의 개발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 1749~1823년)가 천연두 감염을 막는 종두법을 개발한 18세기 말 백신 수송은 매우 어려웠다. 천연두는 치사율이 20%~50%로 매우 높고 후유증도 심각했으며,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에서 유행하며 많은 사망자를 낸 심각한 감염병이었다. 

제너가 주목한 것은 "착유 등 가축과 접촉해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가 걸리지 않는다"는 농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였다. 제너는 우두와 천연두 연구를 통해 우두 환자의 고름을 건강한 사람에 접종해 천연두 감염을 방지하는 종두법을 최초로 시행했다. 

ⓒ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Wikimedia Commons 

그는 1796년 종두법 효과를 확인하고 1798년 일련의 성과를 발표했다. 이후 연구에서는 우두 바이러스가 천연두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는 것이 아닌, 우두 고름이 섞여 있는 우두 바이러스가 천연두 백신으로 기능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천연두 감염 방지에 종두는 아주 효과적이었지만, 종두는 열이나 햇빛에서 불활성화되기 쉬웠다. 이에 당시 기술로는 종두를 저장하는 가장 좋은 용기는 바로 '인체'였다.

우두를 접종한 사람의 체내에서 면역 체계가 바이러스를 이길 때까지, 그 사람의 몸에 나타난 농포(화농으로 인한 발진)에서 고름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에게 접종하는 '인체를 이용한 종두 릴레이' 형태로 종두는 전파됐다. 

종두를 저장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몸에 우두를 접종하고 다른 사람에게 우두를 옮길 수 있는 상태로 만들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종두 접종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의무적으로 우두를 제공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 종두 전파의 과정

이후 종두를 세계 각지로 전파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응용법과 새로운 저장 기술이 개발됐다. 

1803년 에스파니아 국왕 카를로스 4세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우두 접종을 해 효과를 확인한 뒤 북미와 남미, 필리핀 등 에스파니아 식민지에 있는 자신의 신민들에게 우두 백신을 보내 접종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왕 전속 외과의인 돈 프란시스코 사비에르 발미스(Don Francisco Xavier Balmis)는 1803년 11월 에스파니아를 떠나 각국에 백신을 전달하고 1806년 귀국했다.  

종두를 무사히 가져가기 위해 발미스는 인체를 이용한 종두 저장을 응용했다. 우선 발미스는 "지금까지 천연두와 우두에 걸린 적이 없는 22명의 고아를 모아 출항 직전 2명에게 우두를 접종했다. 그 후, 대서양을 횡단하는 선박에 승선한 발미스는 우두에 걸린 아이에서 다른 아이로 종두를 옮기는 작업을 반복해 종두(백신)을 수송하는데 성공했다.

한편, 미국에 종두가 전해진 것은 1800년이다. 하버드대 교수였던 벤자민 워터하우스가 당시 부통령이었던 토머스 제퍼슨의 원조를 받아 수입에 성공했다.

토머스 제퍼슨 ⓒ 데일리포스트 이미지 출처=pexels.com

제퍼슨도 종두 접종을 희망했지만 하버드 의대는 종두 운송에 여러 번 실패했다. 이에 제퍼슨은 "내부 용기에 종두 림프액을 저장해, 이 용기를 둘러싼 외부 용기를 찬물로 채우는" 용기를 고안한 후 하버드대에 종두를 주문했다.

장 드 카로(Jean de Carro)는 유럽의 열성적 종두 지지자로, 오스트리아·폴란드·그리스·베네치아·콘스탄티노플 등 유럽 동부에 종두를 도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카로는 제너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두 림프액을 적신 면을 2장의 유리판으로 봉쇄하고 햇빛을 막기 위해 검은 종이로 감싼 뒤 밀랍으로 봉인하는 방법으로 바그다드로 종두를 옮겼다"고 설명하고 있다.

바그다드에 도착한 종두는 아르메니아인 자녀에게 접종한 후, 역시 인체를 이용한 릴레이 방식으로 인도로 전달됐다. 하지만 종두는 다양한 계급으로 전파됐기 때문에 엄격한 카스트 제도를 가진 힌두교 사람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우두를 접종한 인도 와디야르 왕조(Wadiyar Dynasty )의 왕족 등을 기용한 광고 등을 통해 종두를 점차 인도로 전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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