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인공지능(AI)과 로봇과 같은 첨단 기술이 의료계와 사회복지의 흐름을 바꿔놓을 혁신적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고령화가 진행되는 선진국과 물자와 인력,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 모두 각기 사정은 다르지만 인력 부족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복지 선진국 유럽과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한 일본은 미래 복지정책의 해결책을 ‘로봇’에서 찾고 있다. 길어진 인간의 삶 속에 노후의 동반자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돌봄 로봇은 고령화 문제와 미래 먹거리를 함께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돌봄 로봇 시장 급성장..."간병에서 친구까지"

아시아 최초로 2006년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로봇을 활용한 고령자와 장애인의 돌봄 서비스 지원책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

매년 출산율은 감소하는 반면 노인과 환자들은 급증해 돌봐야 할 전담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25년이면 개호(介護·돌봄) 인력이 37만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케어의 부담을 낮추고 노동 생산성을 높일 대안으로 돌봄 로봇을 선택했다. 지난해 2월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고령사회대책대강’에 따르면 일본은 2015년 24억 엔 규모였던 개호로봇 시장을 2020년까지 500억 엔 규모로 키울 계획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요양시설이 입소자를 돌보는 데 사용할 고가의 로봇을 도입하면 이를 지원한다. ▲환자나 노약자 안아 올리기 ▲이동 지원 ▲용변 지원 ▲치매 환자 지켜보기 ▲목욕 지원 등 5가지 분야에서 사용할 로봇이나 기기를 도입하면 해당 비용 일부를 정부가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본 시장조사 업체 ‘시드플래닝’은 “단카이세대(1947년~49년까지 3년간 태어난 680만명의 전후 베이비붐 세대) 모두가 75세 이상이 되는 2025년까지 노인과 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로봇 등 관련 기기 시장이 급속히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처럼 일본 고령 인구가 새로운 소비 시장의 주체로 부상하면서 일본 기업도 이들을 겨냥한 로봇 개발에 주력, 간병을 위한 여러 용도의 로봇 개발이 활발하다. 혼다의 아시모(ASIMO), NEC 파페로(Papero), 소프트뱅크 페퍼(Pepper), 심리치료용 강아지 로봇 파로(Paro)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돌봄 로봇은 가정과 복지시설 등에서 노인들의 운동과 두뇌 활동을 돕거나 약 복용 시간, 혈압 체크 등 간호서비스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을 통해 혼자 살거나 외부활동이 어려운 노인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EU의 로봇 복지 프로젝트, ‘그로미업(GrowMeUp)'

최근 영국의회의 과학기술평가기관(POST)이 사회복지 분야의 돌봄 로봇 활용에 대해 정리한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돌봄 로봇 및 로봇 장비 대부분은 아직 컨셉 단계 혹은 설계 단계에 있다. 중요한 것은 ▲ 새로운 로봇 및 로봇 기술이 기존 사회복지 환경에 통합될 것인가 ▲ 현재 기술과 공존 가능한 것인가 ▲ 현재 기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 분야에서 진행하고 있는 최대 프로젝트 가운데 하나는 유럽연합(EU)이 지원하는 ‘그로미업(GrowMeUp)’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된 로봇 '그로뮤(GrowMu)'는 다양한 첨단 알고리즘을 통해 돌봄 대상자의 일과를 인지하고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다. 가령 개인 일정을 기억해 필요한 시간에 이를 알려주고, 환자 삶의 질 유지를 위해 새로운 운동과 식생활 개선 방법을 소개한다.


또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의료 관계자, 친구와 동료, 고령자를 위한 사회복지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환자의 요구에 맞는 하루 일정도 짤 수 있다.

그로뮤 개발팀은 “맞춤형 학습(Adaptive Learning)과 다목적 의사결정 알고리즘을 탑재해 사람의 대화와 행동 패턴을 학습, 조치가 필요한 상황을 인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사회의 동반자로 성큼 다가온 '돌봄 로봇'

로봇 분야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인 ‘인터랙션스터디스(Interaction Studies)'에 발표된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령자들은 돌봄 로봇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로봇에 무엇이든 맡기는 것에는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고령자와 로봇 관계에서 열쇠는 고령자가 로봇에 대해 형성한 사고모델(Multiple Mental Model)이다. 연구팀은 "로봇의 인터페이스를 자율성 측면에서 인간에 가깝게 설계할수록 노인들은 불안과 회의감 등 부정적인 감정반응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로봇이 노인의 사회적 고립이나 외로움을 치유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재활 치료나 간병 등 보조적 역할을 기대 할 수는 있지만 정서적 심리적 부분까지 어루만지려는 노력은 당사자에게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한편 영국 와이트섬에서 진행한 유사한 연구에서는 가족의 간병을 지원하는 기술에 대해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육체노동을 지원하고, 간병인의 관절 부담을 경감하는 등 신체적 능력을 보완하는 로봇에 대한 호감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봇 도입으로 기존 인력들은 인간이 아니면 할 수없는 정신적 케어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영국의회의 과학기술평가기관(POST) 보고서에 따르면 돌봄 로봇 도입으로 60억 파운드(한화 8조 6832억 원)의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

고령화에 따른 케어 문제는 국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한국은 고령사회(2017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14%)에서 초고령사회(2025년 65세 이상 노인인구 20%)까지 단 8년이 소요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로봇시장 확대를 위해 올해까지 돌봄 로봇 1000여 대를 보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또 153억원을 투입해 2021년까지 병원이나 요양원 등에서 식사 보조, 욕창 예방, 배변 지원을 하는 돌봄 로봇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올해에는 로봇 산업 활성화와 빅플레이어 육성을 위한 5개년 계획도 내놓는다. 정부 정책의 방향은 사람을 대체하는 로봇 보다 협업 로봇, 고령층 지원을 위한 돌봄 로봇, 웨어러블 로봇 등 인간과 함께 하면서 편의를 돕는 로봇 육성에 초점을 맞출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노인을 위한 복지 시스템이 선진국에 비해 미흡하고 사각지대가 많기 때문에 실버 케어 산업은 국내가 해외보다 큰 시장이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부담을 해결할 수단의 하나로 ‘돌봄 로봇’에 주목하고 있는 해외의 다양한 사례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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