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우리는 언제 '그만 먹어야 한다'고 느낄까. 배가 꽉 찼을 때가 아니라, 충분히 만족했다고 느낄 때일지 모른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오랜 세월 이어져온 식사 철학 '하라하치부(腹八分目)'는 바로 그 감각을 다룬다.
'배가 80% 찼을 때 식사를 멈춘다'는 뜻의 이 전통은 단순한 절제의 미덕을 넘어, 과학적으로도 건강에 이로운 식습관으로 주목받고 있다.
호주 학술매체 더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영국 카디프메트로폴리탄대 영양학 강사 아이슬링 피고트(Aisling Pigott)가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하라하치부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하루 섭취 열량이 낮고 체질량지수(BMI)가 더 낮은 경향을 보였다. 그녀는 이 식사법을 '적게 먹는 법'이 아니라 '충분히 만족할 때 멈추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영양학자들은 이 철학이 단순한 식사 제한이 아니라, '몸의 신호를 인식하고 음식을 존중하는 마음 챙김 식사'와 맞닿아 있다고 본다.
◆ '배부름'보다 '만족감'…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다
하라하치부는 배가 80% 찼을 때 멈추는 것을 의미한다. 완전한 포만감에 이르기 전,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인식하고 식사를 중단하는 것이다. 이 개념은 에도시대 건강서 『양생훈(養生訓)』에서 처음 언급된 이후, 일본인의 식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일본 내 연구에 따르면, 이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하루 평균 섭취 열량이 약 2,000kcal로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약 20% 낮았다. 특히 하라하치부를 실천하는 남성은 채소 섭취가 많고 곡류 섭취가 적어, 장기적으로 더 건강한 식사 패턴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하라하치부가 단순한 식사 제한이 아니라, 신체의 감각과 포만 신호를 인식하는 자기조절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배부름의 기준을 위장의 포만감이 아니라 뇌가 보내는 '만족 신호'에 두는 것이다.
이러한 식사법은 감정적 스트레스나 습관적 과식을 줄이고, 식사 만족도를 높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사 중 스마트폰이나 TV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이 포만감 인식을 방해해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전문가들은 함께 지적한다. 실제로 성인의 70% 이상이 식사 중 화면을 보고 있으며, 이는 칼로리 섭취 증가와 영양 불균형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 장수의 비밀, 절제된 식사에서 찾다
오키나와는 세계에서 장수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하나다. 그들의 식단은 채소와 콩류, 해조류 중심으로 구성돼 있으며, 무엇보다 하라하치부의 실천이 일상에 깊이 스며 있다. 이 절제된 식사법은 단순한 문화적 습관이 아니라, 인체의 대사와 염증 반응을 조절하는 생리적 효과로 이어진다.
실제로 하라하치부는 혈당의 급격한 변동을 줄이고 세포 스트레스를 완화해 노화를 늦추는 데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연구에서도 이 식사법을 실천한 그룹은 인슐린 저항성과 지방 축적이 모두 낮게 나타났다.
다만 식욕 저하나 체중 미달인 사람에게는 지나친 절제가 오히려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절제는 단순한 인내가 아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만족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능력이다. ‘배부름의 8할’에서 멈추는 그 지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건강한 삶의 균형을 일깨워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