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체내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화학 변화를 감지해 필요한 순간에만 약물을 방출하는 신소재가 개발됐다. 관절염 발작 시 즉각 항염증제를 전달할 수 있는 '스마트 인공연골'로 응용될 가능성이 제시되면서, 암을 비롯한 다양한 만성질환 치료에도 새로운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연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이 수행했으며, 국제학술지 '미국화학회지(Journal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 게재됐다.
◆ 체내 화학 변화에 반응하는 신소재
케임브리지대 연구팀은 관절염 발작 시 관절 부위가 정상 조직보다 약간 더 산성화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를 약물 방출의 신호로 활용하기 위해, 고분자 네트워크 내부에 가역적 교차결합(cross-link)을 설계한 신소재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산성도 변화에 따라 기계적 성질이 크게 달라진다.
정상 상태에서는 단단한 겔 형태로 안정적이지만, 산성도가 높아지면 젤리 같은 상태로 변하며 내부에 저장된 약물이 방출된다. 연구팀은 형광 염료 실험을 통해 관절염 조직에서 관찰되는 산성 조건에서 정상 pH보다 훨씬 많은 약물이 방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케임브리지대 스티븐 오니얼(Stephen O’Neill) 박사는 "이 소재는 체내에서 발생하는 이상을 스스로 감지해 필요한 부위에만 치료제를 전달할 수 있다"며 "반복적인 투여 부담을 줄이고 환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 관절염 치료에서 암 치료까지
이 소재는 인체 연골과 유사한 성질을 모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오렌 셔먼(Oren Scherman)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연골의 성질을 흉내 내는 동시에 표적 약물 전달까지 가능해진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스마트 인공연골로 활용될 경우, 관절에 삽입된 소재가 염증을 감지해 항염증제를 직접 방출하는 방식으로 지속적이고 정밀한 치료가 가능하다. 연구팀은 즉효성 약물과 지연 방출형 약물을 함께 담아 며칠, 몇 주, 혹은 몇 달 동안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는 맞춤형 치료 설계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공동연구자인 제이드 맥큐언(Jade McCune) 박사는 "겔의 화학 구조를 조절하면 염증 조직에서만 나타나는 미세한 산성도 변화에 반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며 "그 덕분에 약물이 가장 필요한 시점과 장소에서 방출된다"고 설명했다.
관절염은 영국에서만 1천만 명 이상이 앓고 있으며, 매년 약 102억 파운드(약 19조 원)의 의료비가 소요된다. 전 세계적으로는 6억 명 이상이 이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번 연구에서 개발된 소재는 관절염 환자의 통증 완화와 치료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암과 같은 다른 질환 치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특히 이 시스템은 열이나 빛 같은 외부 자극이 필요하지 않고, 체내에서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화학 반응만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따라서 장기간 체내에 삽입되어 자동으로 약물을 방출하는 차세대 바이오소재로 발전할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동물실험을 포함한 생체 환경 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검증할 계획이다. 오니얼 박사는 "이 접근법이 성공적으로 발전한다면, 환자 맞춤형이고 부작용을 최소화한 새로운 세대의 치료제 전달 시스템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