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ixabay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ixabay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만약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같은 순간에 불을 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미소니언협회 미국역사국립박물관 전기 컬렉션 큐레이터 해럴드 월리스(Harold Wallace)는 호주 비영리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The Conversation)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 현상을 설명했다. 그는 “전력 소비는 늘겠지만, 더 큰 문제는 밤하늘의 상실”이라고 분석했다.

◆ 전력망은 순간 충격을 견딜 수 있을까

수십억 개의 스위치가 동시에 눌리면 전력 수요는 순식간에 폭증한다. 전기는 석탄·천연가스 화력, 원자력, 수력, 풍력, 태양광 등 다양한 발전원에서 생산돼 송전망을 통해 각 가정과 기업으로 흘러간다. 

2019년 미국 전력 수요 패턴 그래프.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으로 전력 사용이 늘고, 주말에는 기업 활동이 줄어 수요가 감소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2019년 미국 전력 수요 패턴 그래프. 여름에는 냉방, 겨울에는 난방으로 전력 사용이 늘고, 주말에는 기업 활동이 줄어 수요가 감소한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

중요한 것은 ‘즉각적인 대응’이다. 누군가 불을 켜는 순간 발전소는 그만큼의 전력을 곧바로 보충해야 하며, 이 균형이 몇 초라도 무너지면 대규모 정전으로 이어진다.

발전 방식마다 특징은 다르다. 원자력과 석탄은 안정적이지만 둔감하고, 천연가스는 빠르게 반응하며, 수력은 필요할 때 물을 흘려보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는 친환경적이지만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최근에는 대규모 배터리와 양수 발전이 보완책으로 쓰이고 있으나, 아직은 도시 전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럼에도 세계적 대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국가별 전력망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국경을 넘는 연결망도 위기 시에는 신속히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보급이 큰 역할을 한다. 미국 에너지부는 LED 사용만으로도 가구당 연간 약 225달러(약 31만 원)의 전기료를 절약할 수 있다고 밝혔다.

◆ 지구는 환해지고, 별빛은 사라진다

더 직접적인 변화는 밤하늘에서 나타난다. 인공조명이 대기 중의 먼지와 수증기에 반사돼 하늘 전체가 흐릿하게 밝아지는 ‘스카이그로우(sky glow)’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지구는 우주에서 더욱 환히 빛나지만, 지상에서는 별빛이 보이지 않게 된다.

지평선에서 퍼져 나온 도시 불빛이 하늘을 밝히며 별빛을 희미하게 가리고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지평선에서 퍼져 나온 도시 불빛이 하늘을 밝히며 별빛을 희미하게 가리고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빛 공해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건강과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체의 수면·각성 주기를 흔들고, 곤충·새·바다거북 같은 야행성 동물의 방향 감각을 교란한다. 텅 빈 사무실의 불빛, 위로 쏘아 올린 가로등처럼 불필요한 조명이 만들어내는 ‘밤의 과잉’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별빛을 잃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손실이기도 하다. 인류는 오랜 세월 동안 별을 보며 길을 찾고, 신화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켜왔다. 인공광에 가려진 밤하늘은 천문 연구를 방해할 뿐 아니라, 우리 삶의 상징적 풍경 하나를 지워버리는 셈이다.

결국 전 세계가 동시에 불을 켠다면 전력망은 견딜 수 있겠지만, 밤하늘의 별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