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진화는 항상 앞으로만 나아갈까? 갈라파고스 제도의 야생 토마토는 이 상식을 정면으로 뒤엎는다.
최근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UCR) 연구진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갈라파고스의 야생 토마토가 수백만 년 전 조상처럼 다시 독성을 갖추는 '역진화(reverse evolution)' 현상이 확인됐다.
◆ 수백만 년 전 독성을 되살린 토마토
토마토, 감자, 가지 등 가지과 식물은 해충이나 초식 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알칼로이드라는 쓴맛의 독성 물질을 생성한다. 이 알칼로이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일반적인 토마토와 감자는 '25S형' 알칼로이드를, 가지는 '25R형' 알칼로이드를 생산한다. 두 분자는 원자는 동일하지만 입체 구조가 달라 생물학적 효과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오늘날 재배되는 토마토는 모두 25S형을 만든다. 그런데 연구팀은 갈라파고스 서쪽의 비교적 젊은 화산섬에 자생하는 야생 토마토가, 현대 토마토가 아닌 가지와 유사한 25R형 알칼로이드를 생성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남미에 자생하던 고대 토마토가 지녔던 특성과 같다. 사라졌던 조상의 유전자 스위치가 다시 켜진 것이다.
◆ 단 4개의 아미노산이 되돌린 진화의 방향
이러한 역진화의 비밀은 유전자 하나에서 비롯됐다. 연구팀은 알칼로이드 합성에 관여하는 특정 효소의 아미노산 서열을 분석했고, 단 4개의 아미노산이 바뀐 것만으로도 토마토가 25S형이 아닌 25R형 독성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유전적 회귀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지형과 밀접한 연관을 보였다. 비교적 오래되고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동쪽 섬의 토마토는 현대 토마토처럼 25S형을 생산했지만, 척박하고 젊은 서쪽 섬의 토마토는 더 강한 생존 전략을 위해 고대의 독성을 되살린 것으로 보인다. 예상할 수 없는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식물의 유연한 진화 잠재력이 드러난 셈이다.
◆ 진화, 때로는 과거로 향한다
이번 연구는 진화가 항상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생물은 때로 과거의 형질을 다시 획득하거나, 비활성화됐던 유전자를 되살릴 수 있다. 특히 갈라파고스 토마토의 사례는 단지 비슷한 형질을 되찾은 것이 아니라, 과거와 정확히 동일한 유전 경로를 통해 조상의 특성으로 되돌아간 매우 드문 사례로 주목된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유전자 조합을 되살리는 갈라파고스 토마토는, 식물이 얼마나 뛰어난 적응 능력을 지녔는지를 다시금 일깨운다. 이처럼 과거의 형질이 되살아나는 현상이 다른 생물에서도 얼마나 흔한 일인지, 또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에 대한 후속 연구가 이어질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