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수면으로도 활력 유지하는 사람들, 유전자가 열쇠였다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 "하루 7시간 이상 자야 한다"는 오랜 통념이 무색하게, 단 3~4시간의 수면만으로도 끄떡없이 활력을 유지하며 뛰어난 집중력과 창의성까지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놀라운 능력의 비밀은 바로 그들의 유전자에 숨겨져 있었다.
평균적인 사람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 자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이들을 '쇼트 슬리퍼(Short Sleeper)'라고 부른다.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의 신경과학자이자 공동저자인 잉-후이 푸(Ying-Hui Fu) 박사는 이들의 생물학적 특성을 밝히기 위해 수십 년간 유전자를 추적해왔다.
그동안 DEC2, ADRB1, NPSR1, GRM1 등 여러 유전자에서 '자연적 단시간 수면(NSS, 평균적인 사람보다 짧은 시간만 자도 충분한 수면을 취하는 현상)'과 관련된 변이가 확인된 바 있다. 최근에는 수면-각성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SIK3(Salt-inducible kinase 3) 유전자에서 새로운 단서가 발견됐다.
푸 박사팀은 국제 학술지인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수면-각성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SIK3 유전자에서 특정 돌연변이('N783Y')가 나타나는 경우, 자연적으로 짧은 수면을 취하는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팀은 활발한 생활을 이어온 70대 자원자의 유전체를 분석해 해당 변이를 확인했으며, 수면 추적 결과 이 자원자는 6.3시간 수면만으로도 충분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동일한 변이를 주입한 생쥐 모델에서는 일반 생쥐보다 확연히 줄어든 수면 시간, 평균 30분 이상 더 적게 자는 것이 관찰됐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이 돌연변이가 단백질의 인산화 기능을 방해하여 수면 시간 단축으로 이어진다는 메커니즘도 규명됐다.
특히 이들 '쇼트 슬리퍼'는 단순히 수면 시간이 짧을 뿐 아니라 수면의 질도 높고, 기억력이나 면역력 유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 박사팀은 이전 연구에서 이러한 유전형을 지닌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이 낮고 전반적인 삶의 질이 우수하다는 사실도 보고한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인간 수면의 유전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나아가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유전자 기반 맞춤형 치료 전략 개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푸 박사는 "SIK3는 진화적으로 핵심적인 수면 유전자이며, 수면장애 치료의 유망한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짧은 수면이 단순한 습관이 아닌, 유전적으로 형성된 생물학적 특성일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는 획일적인 수면 기준에서 벗어나 개인의 유전적 특성과 생체 리듬을 고려하는 맞춤형 수면 관리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