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쥐 머리·목 종양 50% 줄여… 인간 적용 임상도 준비 중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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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생쥐의 머리와 목 부위에 생긴 종양이 절반 가까이 사라졌다. 항암제도, 방사선도 아니었다. 암세포만을 정밀하게 제거하는 '유전자 가위' 기술이 쓰였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 연구팀은 유전자 편집 도구인 CRISPR-Cas9을 활용해 생쥐의 두경부(머리·목) 종양 크기를 평균 50%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Advanced Science》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Advanced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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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암세포의 생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유전자 'SOX2'를 표적으로 삼았다. SOX2는 태아 시기에 세포 분화를 촉진하는 단백질로, 정상 성인 조직에서는 대부분 비활성 상태다.

그러나 일부 암세포에서는 이 유전자가 다시 활성화되며, 빠른 증식과 치료 저항성을 유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CRISPR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SOX2 유전자를 정밀하게 절단하고 암세포를 직접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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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순한 유전자 절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가장 큰 과제는 이 유전자 가위를 암세포 내부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진은 유전자 가위를 지질 나노입자(Lipid Nanoparticle)에 탑재하고, 암세포만을 표적하는 특이적 항체와 결합시켰다.

이 나노입자는 일주일 간격으로 총 3회 주사됐으며, 84일 후 종양 크기가 평균 5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기술은 약물을 전신에 퍼뜨리는 기존 항암치료와 달리, 종양 부위에만 정밀하게 작용해 부작용을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또 SOX2는 정상 세포에는 거의 발현되지 않아, 부작용 가능성도 낮은 '이상적인 타깃'으로 평가된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다니엘 레비(Daniel Levy) 교수는 "이번 실험은 유전자 편집 도구가 실제 암 치료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첫 사례 중 하나"라며 "치료 저항성을 지닌 고형암에 대한 접근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아직 동물 실험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인간에게서 동일한 효능과 안전성이 재현될 수 있을지는 향후 임상시험을 통해 입증돼야 한다.

특히 암세포만을 완벽히 구별해 유전자 가위를 전달하는 정밀성 확보는 여전히 기술적 도전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이번 성과는 전통적인 화학요법·면역요법에서 벗어나, 유전정보에 기반한 정밀 의료로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치료 타깃의 분자 수준 식별과 환자 맞춤형 접근이 결합될 경우, 암 치료 패러다임 전환이 본격화될 수 있다는 평가다.

연구팀은 현재 다발성 골수종, 림프종, 간암 등 다양한 고형암에 이 기술을 적용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 중이며, 사람 대상의 임상시험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CRISPR는 2012년 처음 보고된 이후 유전자 편집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꿔왔지만, 암 치료에 실질적으로 적용한 사례는 아직 많지 않다. 이번 연구는 그 기술이 '이론'에서 '현실'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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