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행동의 강도, 신념 아닌 뇌 연결성과 관련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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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어떤 사람들은 정치에 유독 적극적이다. 시위에 참여하고,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며,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행동에 나선다. 단지 성격이나 신념 때문일까? 최근 미국 연구팀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그 행동의 강도는 뇌의 특정 회로와도 관련이 있을 수 있다.

하버드, 스탠퍼드, 노스웨스턴대 의과대학 등 공동 연구팀은 174명을 대상으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통해 뇌 활동을 분석하고, 각자의 정치 행동 경향을 비교했다. 그 결과, 사회 인지와 보상 예측에 관여하는 특정 회로의 연결성이 강할수록 정치 참여가 활발한 경향이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브레인(Brain)』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B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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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정치 성향 자체보다는 ‘참여의 강도’에 주목했으며, 이 강도는 특정 뇌 회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해당 회로는 사람의 정치적 입장을 바꾸기보다는, 기존 견해를 얼마나 강하게 표현하는지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저자인 샨 시디키(Shan H. Siddiqi) 박사는 "정당이나 이념은 뇌 손상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특정 회로가 손상되면 같은 입장이라도 표현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는 뇌의 특정 부위에 손상이 생기면 그 부위와 관련된 증상이 나타난다고 여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정치 행동처럼 복잡하고 개인차가 큰 행동은 이러한 단순한 모델로 설명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병변 네트워크 매핑(Lesion Network Mapping)’이라는 기법을 도입했다. 이 방법은 손상된 부위가 서로 다르더라도, 동일한 신경 회로를 침범하면 유사한 행동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원리에 기반한다.

마치 여러 길이 하나의 고속도로로 이어지듯, 각기 다른 뇌 손상도 같은 회로를 건드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복잡한 정치 행동이 단일 원인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이 구조에 있다.

이번 연구의 또 다른 특징은 정치 행동을 단지 사회적 현상이 아니라, 정신건강과 연계된 신경학적 변화의 일부로 접근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연구에 참여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일부 환자들이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극단적인 표현을 보이는 사례에 주목해왔다. 연구팀은 "정치 행동도 임상적 변화로 관찰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연구팀은 해당 회로를 경두개 자기 자극(TMS) 기술로 조절하는 후속 실험도 진행 중이다. 정치 행동뿐 아니라 이타성, 종교성, 사회적 참여 등 다양한 행동 특성을 분석해, 인간 행동에 관여하는 ‘회로 지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정치적 열정은 때로 거리에서 드러나지만, 시작은 머릿속 깊은 회로에서 출발할지 모른다. 이번 연구는 정치 행동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가능함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정치 참여가 사회적·문화적 요인뿐 아니라 신경 회로와 같은 생물학적 특성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를 보다 입체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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