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는 환경을 닮는다…616개 언어 분석 결과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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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이누이트어에는 눈을 뜻하는 단어가 유독 많다"는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저 과장된 소문일까, 아니면 진짜일까?

언어가 환경을 반영한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이 주장이, 최근 대규모 데이터 분석을 통해 다시 조명됐다.

전 세계 616개 언어를 분석한 연구 결과, 이누이트어는 실제로 눈과 관련된 어휘가 가장 풍부한 언어 중 하나로 확인됐다. 말로만 떠돌던 이야기가 데이터로 뒷받침된 것이다. 

◆ 이누이트어의 눈 표현, 데이터로 입증되다

UC 버클리, 서식스대학교, 막스플랑크연구소 공동 연구팀은 1,574개 이중 언어 사전을 분석해 616개 언어와 160여 개 개념 간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각 언어에서 특정 개념이 얼마나 자주 표현되는지를 정량화해, 언어와 환경, 문화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자 했다.

예상대로 몽골어는 '말', 일본어는 '맛', 독일어는 '맥주' 관련 단어가 많았다. 그렇다면 이누이트어는 실제로 ‘눈’에 대해 더 다양한 표현을 갖고 있을까?

연구 결과, 동부 캐나다 이누크티투트(Inuktitut)어는 눈과 관련된 단어가 616개 언어 중 가장 많았다. 예를 들어 kikalukpok(단단한 눈 위를 걸을 때 나는 소리), apingaut(첫눈이 내리는 현상) 같은 단어들이 실제 사전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누크티투트어: 이누이트어의 주요 방언 중 하나로 이누이트어와 같은 언어 계통에 속하지만,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알래스카와 서부 캐나다의 이누이트어 계열 언어들도 상위권에 올랐다. 오랫동안 회의적으로 여겨졌던 '눈 단어 전설'이, 실제 데이터로 다시 확인된 셈이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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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연구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게재됐다. 

◆ 단어 속에 담긴 삶의 방식

이번 연구는 눈뿐만 아니라 다양한 개념이 지역 환경에 따라 언어 속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표현되는지를 보여준다. 

예를 들어, 강수량이 많지 않은 남아프리카의 동부 타아(East Taa)어에는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한 예의나 비를 내리게 하기 위한 의식 등을 표현하는 어휘가 존재했다.

'냄새'와 관련된 표현이 유독 발달한 언어도 있었다. 태평양 지역의 마셜어(Marshallese)에는 젖은 옷 냄새, 피 냄새, 손에 남은 생선 냄새를 각각 구분하는 단어들이 있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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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언어가 단순한 단어의 모음이 아닌, 사용자의 삶과 환경, 문화적 우선순위가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보여주는 창과도 같다.

연구팀은 이 분석이 언어와 문화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모든 데이터가 의미 있는 개념 차이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며, 해석 시에는 각 언어의 문화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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