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우리 몸의 나이와 건강 상태는 눈이 먼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망막 스캔만으로 심장병 위험과 생물학적 노화 속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과 캐나다 공동 연구팀은 망막의 미세 혈관 구조가 심혈관 질환과 노화, 수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
◆ 망막 속 혈관, 몸 전체의 거울
캐나다 맥매스터대학교(McMaster University)와 인구건강연구소(PHRI) 공동 연구팀은 7만 4,000여 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망막 스캔 이미지, 유전자 데이터, 혈액 샘플을 분석했다. 연구에는 캐나다 노화 종단연구(CLSA), 영국 바이오뱅크(UK Biobank), GoDARTS(영국 당뇨병 유전 연구), PURE 연구 등 네 개의 대규모 코호트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망막 혈관의 가지가 단순할수록 심혈관 질환의 유전적 위험이 높고 염증 수준이 증가했으며, 수명 단축과 같은 생물학적 노화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러한 결과가 단순한 상관관계가 아니라 노화와 심혈관 질환을 동시에 유발하는 동일한 분자적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유전적 변이를 이용해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멘델 무작위화(Mendelian randomization)' 기법으로 수행됐다.
맥매스터대학교 의대 마리 피게르(Marie Pigeyre) 부교수는 "눈은 신체의 순환계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다. 망막 혈관의 미세한 변화는 몸 전체의 작은 혈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반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 혈관 노화를 늦출 단백질 표적 찾다
연구팀은 망막 혈관의 형태를 분자 수준에서 설명하기 위해 혈액 바이오마커와 유전자 데이터를 결합해 분석했다. 그 결과 염증과 혈관 노화에 관여하는 핵심 단백질 두 가지, 'MMP12'와 'IgG–Fc 수용체 IIb'를 확인했다. 이 단백질들은 염증 신호 경로를 조절하고 혈관의 구조적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노화와 질환의 진행에 깊이 관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게르 부교수는 "이번 연구는 혈관 노화를 늦추고 심혈관 질환의 부담을 줄이며, 나아가 수명을 연장할 수 있는 잠재적 약물 표적을 제시했다"라며 "유전자, 혈액, 망막 데이터를 통합함으로써 노화가 혈관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심장병이나 치매 등 노화 관련 질환의 위험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복잡한 검사가 필요하다. 연구팀은 앞으로 눈 스캔 하나로 질환 위험을 빠르고 비침습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망막 혈관이 '몸 전체의 혈관 건강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연구팀은 향후 임상 적용을 통해 눈 스캔 기반 진단 기술이 조기 예측과 예방 의학의 핵심 도구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