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잡음 섞인 단 8초짜리 홈비디오가 기적을 만들었다. 목소리를 잃은 한 여성이 인공지능(AI)의 도움으로 25년 만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되찾은 것이다.
주인공은 영국 런던에 사는 예술가 사라 에제키엘(Sarah Ezekiel·60) 씨다. 운동뉴런질환(MND)으로 목소리를 잃은 그는 오랫동안 보조기기의 기계음에 의존해야 했다. 그러나 기술은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이번 성과는 AAC(보완대체의사소통) 기술 기업 스마트박스(Smartbox)와 AI 음성 스타트업 일레븐랩스(ElevenLabs)의 협력으로 이뤄졌다. 단 몇 초의 불완전한 자료만으로도 목소리를 복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 잡음 섞인 8초가 만든 기적
에제키엘 씨는 2000년, 첫 아들 임신 중 MND 진단을 받았다. 병은 빠르게 진행돼 목소리와 손 기능을 잃었고, 결국 결혼 생활도 무너졌다. 이후 그는 시선 추적 장치를 통해 화면의 글자를 눈으로 선택하고, 이를 컴퓨터 합성 음성이 읽어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인공음성은 본래의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가진 자료는 소음이 섞인 8초짜리 홈비디오뿐이었다. 전문가들조차 복원이 어렵다고 봤지만, 스마트박스와 일레븐랩스는 두 단계의 AI 모델을 적용했다. 첫 번째 단계에서 영상 속 잡음을 제거하며 목소리를 분리했고, 두 번째 단계에서 이를 정교하게 복원해 실제와 가까운 음성을 재현했다.
복원된 목소리는 런던 특유의 억양과 예전 말투까지 그대로 되살아났다. 에제키엘 씨는 "내 목소리를 다시 들었을 때 거의 울 뻔했다. 정체성을 되찾은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태어난 뒤 한 번도 어머니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아들 에릭 씨 역시 "엄마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다"며 감격을 전했다.
◆ AI 기술로 되찾은 존엄과 연결
이번 성과는 단순한 기술적 성공을 넘어, 목소리를 잃은 이들이 정체성과 감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AFP 통신은 이 사례를 "정체성과 감정적 연결을 되살린 중대한 성과"로 평가했다.
실제로 비슷한 질환을 앓는 다른 환자들은 '보이스 뱅킹(Voice Banking)'을 통해 미리 목소리를 녹음해 두기도 한다. 최근 영국의 또 다른 MND 환자 안나 배로(Anna Barrow) 씨는 300여 개 문장을 녹음해 미래를 대비했다는 사례가 보도됐다. 이는 과거 음성 데이터가 거의 없는 환자들에게 대안적 방법으로 꼽힌다.
스마트박스와 일레븐랩스는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AI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사람의 개성을 복원하는 기술"임을 강조했다. 특히 일레븐랩스는 '임팩트 프로그램(Impact Program)'을 통해 전 세계 AAC 사용자에게 맞춤형 목소리 복원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으며, 곧 74개 언어로 확장할 계획이다.
에제키엘 씨는 현재 눈동자 움직임으로 예술 작품을 창작하며, 수익을 MND 환우와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그는 "로봇 같은 기계음이 아닌, 진정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AI와 AAC 기술이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인간 존엄의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전환점이라고 평가한다. 더 많은 환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는 날이 머지않았다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