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단백질이 비밀… 씹는 것만으로 감염병 차단 효과 확인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감기나 독감처럼 입을 통해 전염되는 바이러스를, 씹는 것만으로 막을 수 있다면 어떨까. 마스크도, 백신도 없이 말이다.
미국 연구팀이 개발한 '항바이러스 껌'은 입안에서 바이러스를 직접 포획해 퍼지지 못하게 막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복잡한 약물 투여나 전문 장비 없이도, 일상 속 행동 하나만으로 감염병 전파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치과대학의 헨리 다니엘(Henry Daniell) 교수와 핀란드 헬싱키대학교 연구팀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연구 대상은 인플루엔자 A형(H1N1, H3N2)과 단순포진 바이러스(HSV-1, HSV-2)였으며, 껌을 씹은 후 바이러스의 전파 가능성이 최대 95%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Molecular Therapy』에 게재됐다.
항바이러스 효과의 핵심은 FRIL(Fruit Lectin)이라는 식물 유래 단백질이다. 라블랩 퍼퓨레우스(Lablab purpureus)라는 콩과 식물에서 추출한 이 단백질은 바이러스 표면의 당 구조에 달라붙어, 세포 안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는다.
쉽게 말해, 바이러스가 몸속에 들어가려는 문을 '미리 잠가버리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FRIL은 여러 바이러스에 광범위하게 작용하며, 특정 바이러스에만 반응하는 백신과는 다르게 ‘다목적 방패’ 같은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껌을 15분간 씹는 상황을 실험 장치로 재현했다.
그 결과, 타액 속에 방출된 FRIL은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 입술이나 피부에 물집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까지 강력하게 중화시켰다. 특히 HSV-2 바이러스는 90% 이상 억제되는 효과를 보였으며, 이는 기존 구강 항바이러스제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이 껌은 특수한 화학약품이 아닌, 식물성 단백질로 만들어졌다. 합성 약물이 아닌 천연 성분이라는 점에서 안전성과 접근성 측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연구팀은 "식물이 감염병 예방에 쓰인 적은 있지만, 껌처럼 간편한 형태로 활용된 것은 보기 드물다"며 "이번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 껌은 실온에서 최대 2년까지 보관 가능하며, 미국 식품의약국(FDA) 기준에 따라 임상용으로 생산되었다.
보관과 운반이 쉬운 데다 복용 방식도 간단해, 백신 접종률이 낮은 지역이나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국가에서도 활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현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이 준비 중이며, 연구팀은 조류독감(H5N1 등)처럼 동물에게 퍼지는 바이러스 차단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