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일상에서 느낀 짜증과 분노를 일기장에 적거나 SNS에 올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분노를 느낀 상황을 종이에 적은 후, 그 종이를 구겨서 버리거나 파쇄하면 부정적 감정이 거의 사라진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번 논문은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됐다.
앞선 연구에서는 헤어진 연인의 물건을 태우거나 파괴하면 실연 상대에 대한 분노 감정을 잊을 수 있게 되는 등, 부정적인 감정과 결부된 물건을 버림으로써 해당 감정에서 벗어나는 '분리' 접근법의 유효성이 시사되고 있다.
하지만 종이에 쓰고 버리는 더 쉬운 방법을 검증한 연구는 없었다. 이에 일본 나고야 대학 대학 카와이 노부유키 교수 연구팀은 분노 상황을 종이에 써서 폐기하면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대학생 참여자에게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등 사회문제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쓰도록 요청했다. 이후 제출된 에세이에 대해 "교양 있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 당신이 대학에 있는 동안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혹평해 작성자를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 후, 자신의 에세이가 폄하된 뒤 느낀 기분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종이에 적어달라고 요청하고,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버린 그룹(실험1) ▲종이를 분쇄기로 처리한 그룹(실험2)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넣어 보관한 그룹(대조군)으로 나누었다.
연구팀은 감정 척도 검사 중 하나인 파나스(PANAS, Positive and Negative Affect Schedule) 기법을 활용해 참가자의 기분 상태를 파악했다. '실험 시작 전' '도발(혹평) 후' '종이에 쓴 후' 3회로 나누어 분노를 측정하고 비교한 결과, 종이를 처분한 그룹은 분노가 거의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가 파나스(PANAS)로 평가한 '분노점수(1~6)' 추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왼쪽이 종이를 구겨 휴지통에 버린 '실험1'이고, 오른쪽이 분쇄기로 처리한 '실험2' 그래프다.
두 실험 모두 분노를 적은 종이를 처분한 그룹(Disposal)은 분노가 '안정(Baseline)' 수준까지 낮아진 반면, 종이를 보관한 그룹(Retention)은 여전히 부정적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쓰레기통에 버릴 때와 파쇄할 때의 효과는 비슷했다.
카와이 교수는 "우리는 이 방법이 분노를 어느 정도 억제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분노가 거의 사라지는 결과는 놀라웠다"면서 "분노를 느낀 원인과 현재의 기분을 종이에 적고 이를 폐기하는 행위가 화를 가라앉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이 과정이 '역방향 주술감염(backward magical contagion)' 현상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역방향 주술감염'이란 개인과 얽힌 물체에 행해진 행동이 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신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직장이나 가정에서 쉽게 분노를 억제할 수 있는 이 방법은 일상의 다양한 상황에서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