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 얼음을 구부리면 전기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됐다.
스페인 카탈루냐 나노과학기술연구소(ICN2), 중국 시안교통대, 미국 스토니브룩대 공동연구팀은 평범한 얼음에서도 구부리면 전기 분극을 만들어내는 '플렉소일렉트릭 효과(Flexoelectric effect)'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플렉소일렉트릭 효과는 물질의 대칭성에 관계없이, 굽힘이나 변형 같은 기계적 힘만으로 전기 분극이 유도되는 현상이다.
이번 연구 성과는 국제학술지 'Nature Physics'에 게재됐다.
◆ 구부리는 힘으로 전하가 생긴다
힘을 가하면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을 압전효과라고 한다. 라이타 착화석 등에서도 활용되는 원리다. 그러나 일반 얼음은 결정 구조 때문에 전체 극성이 상쇄되어, 압력을 가해도 전하가 생기지 않는다.
연구팀은 얼음을 구부리거나 변형시키는 것만으로 전기가 생기는 '플렉소일렉트릭 효과'에 주목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순수한 물을 금·백금으로 코팅한 얇은 포일 사이에 넣고 -20℃에서 얼려 두께 약 2mm의 '얼음 콘덴서'를 만들었다. 이후 얼음을 구부리며 생기는 아주 작은 전하를 측정했다.
분석 결과, 얼음이 만들어내는 전기의 크기는 센서용 세라믹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특히 -25℃ 이상에서는 얼음 표면에 얇은 '의사액체층(QLL, Quasi-liquid Layer: 거의 액체 상태의 층)'이 형성되면서 전기 발생이 급격히 늘어났다.
반대로 -70℃ 이하에서는 얼음 표면이 스스로 전기를 띠는 성질을 보여, 약 -113℃에서 전기 생성이 가장 활발했다. 이 현상은 얼음 내부가 아니라 표면 수십 나노미터 두께에서만 나타나, 얼음 표면과 전기 생성이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 번개 발생 메커니즘에 실마리
번개 구름 안에서는 작은 얼음 입자들이 서로 충돌하며 전하가 분리되고, 거대한 전위차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압전성이 없는 얼음이 어떻게 전하를 띠는지는 오랜 과학적 미스터리였다.
연구팀은 구름 속 얼음 입자 충돌을 모델링하고, 플렉소일렉트릭 효과로 생성되는 전하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 충돌 시 얼음이 크게 변형하며 충분한 전위차가 발생했고, 기존 실험 데이터와도 높은 일치를 보였다. 이를 통해 플렉소일렉트릭 효과가 번개 발생 원리의 한 단서가 될 수 있음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극한 환경에서도 얼음을 활용한 새로운 발전 소자를 개발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얼음의 전기적 특성과 번개 발생 메커니즘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