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번아웃은 흔히 직장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원인은 훨씬 더 일상적이다."
극심한 피로와 무기력, 업무 회피로 이어지는 ‘번아웃 증후군’이 과도한 업무나 직장 스트레스 때문만은 아니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번아웃을 직무와 관련된 현상으로 정의하지만, 최근 노르웨이과학기술대(NTNU) 연구팀은 이 정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유럽 심신의학협회저널'(Journal of Psychosomatic Research)에 실렸다.
◆ 일보다 ‘삶’이 사람을 소진시킨다
연구팀은 번아웃 증상을 겪는 노르웨이 성인 근로자 813명을 대상으로 그 원인을 조사했다. 대상자의 약 70.5%가 여성이고, 연령별로는 1834세가 38.5%, 3549세 18%, 50세 이상이 42.7%였다.
조사 결과, 전체의 72.3%가 번아웃 원인이 직장이 아니라 다른 요인 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직무 자체를 원인으로 꼽은 비율은 27.7%에 불과했다. 이는 번아웃의 주요 원인이 과중한 업무보다 수면 장애, 신체 질환, 가족 내 갈등, 불안 성향 같은 성격적 요인에 있음을 보여준다.
연구를 이끈 렌초 비앙키(Renzo Bianchi) NTNU 부교수는 "불안 성향이 강한 사람에게는 사소한 걱정거리도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소모시킬 수 있다"며 "이런 스트레스는 반드시 직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 전반의 구조와 개인 성향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 직업적 스트레스와 번아웃의 악순환
1970년대 미국 심리학자 하버트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는 번아웃 증후군을 주로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겪는 만성 직업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현상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이후 연구들에선 번아웃과 업무 스트레스 간 연관성이 기존 생각보다 약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특히 번아웃 상태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피로가 쌓이며, 오히려 직무 스트레스가 악화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업무량 조절을 넘어 개인 성격, 수면 습관, 가족 관계 등 직장 외적 요인을 함께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앙키 교수는 "번아웃을 업무 기반 문제로만 인식하는 기존 정의는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일부에겐 분명 직무가 원인일 수 있지만, 대부분은 복합적인 심리·사회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자신의 일을 사랑하며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일을 찾고 그 안에서 삶의 균형을 찾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