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8년 바티칸 역사 최초 ‘생전 사임’과 ‘전 현직 교황’ 공개 기록

©데일리포스트=2022년 12월 3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교회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 DB 편집
©데일리포스트=2022년 12월 31일 선종한 로마 가톨릭교회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 DB 편집

|데일리포스트=송협 선임기자| “하느님 앞에서 거듭 제 양심을 성찰하면서 저는 고령으로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는 확신에 이르렀습니다. 교회의 유익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한 후 결심했으며 이제 교황직은 공석이 될 것입니다. 권한이 있는 이들이 콘클라베를 열어 새 교황을 선출해야 할 것입니다.” (2013년 2월 13일 일반 알현 중 교황직 사임을 밝힌 베네딕토 16세 교황)

가톨릭 전통을 수호해왔던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23년 새해를 불과 하루 앞둔 2022년 12월 31일 오전 선종했다. 향년 95세다. “명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선종 소식을 슬픔 속에서 전한다.”는 바티칸 교황청 대변인의 공식 발표에 전 세계 가톨릭 교회와 신자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 이외에 어떤 것도 좋아하지 말 것’(성 베네딕토 규칙서)을 실천을 위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모든 종교를 대상으로 선을 긋지 않았고 오직 사랑과 귀함, 그리고 존중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직자로 기억하고 있다.

모든 종교를 존중하기 위해 노력했던 베네딕토 16세는 교황 재직 시절 동방정교회와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간 데 이어 이슬람 국가를 방문, 이슬람 사원에서 함께 기도를 드렸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에 교황청 과학 아카데미 원장에 개신교 신자를 임명했으며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수에 이슬람인을 임명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신앙이란, 세상의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손을 잡은 채로 고요히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사랑을 바라보는 것 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베네딕토 16세 교황(Benedict XVI)은 누구이며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나?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 제265대 교황이며 교황 선출 전 이름은 ‘조제프 알로이지우스 라칭거(Joseph Aloisius Ratzinger)다.

교황은 1927년 가톨릭적인 색채가 강했던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 마르크틀암인에서 경찰이던 아버지와 호텔 요리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3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39년 신학교에 입학한 라칭거(교황 이전 이름)는 1943년 독일군에 강제 징집돼 바이에른 대공포대에서 복무하다 탈영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1년 친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사제 서품을 받았고 뮌헨 본당에서 사목활동과 20년 넘는 기간 신학교 교수로 봉직했다. 교황은 오랜 학문적 경력 동안 ’그리스도교의 개요(1968년)‘ ’교리와 계시(1973년) 등 신학 관련 중요 저술을 남겼다.

사진 좌측, 베네딕토 16세 교황 신학교 시절 가족·사진 / 우측 1951년 친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있다 / CPDC 가톨릭 평화방송 영상 발췌
사진 좌측, 베네딕토 16세 교황 신학교 시절 가족·사진 / 우측 1951년 친형 게오르그 라칭거와 함께 사제서품을 받고 있다 / cpdc 가톨릭 평화방송 영상 발췌

라칭거는 보후적인 공의회에서 진보적인 성향을 기반으로 개혁을 갈망했던 인물로도 잘 알려졌다. 1977년 3월 교황 바오로 6세는 뮌헨 대주교로 라칭거를 임명한데 이어 3개월 후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1981년 오랜 벗이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신앙교리성 장관으로 임명됐는데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라칭거는 전체주의 체제에서 살아왔고 교회에 대한 관점도 비슷했다.

깊은 신앙적 소신 외에도 그는 예술적 재능과 함께 타인을 배려하는 관대함, 그리고 겸손함을 인정받았다. 독일어 외에 다수의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알았고 모차르트를 좋아했던 그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지만 교황은 타 종교에 대한 존중을 실천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특히 유대교나 이슬람교 등과 같은 다른 종교와 접촉했던 역사적인 노력에 그 역시 편승하면서 종교와 인종간 벽을 허물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2005년 4월 19일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 결과 라칭거는 78세라는 고령에 교황으로 선출됐다. 교황명은 서방교회 수도원 창시자이며 유럽의 수호성인인 ‘베네딕토’ 성인의 이름을 따 베네딕토 16세를 선택했다.

교황에 즉위한 베네딕토 16세의 첫 행보는 벗이었던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추진했던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비롯한 타 그리스도교 교회들과 대화를 잇고 서로 신뢰하며 존중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동성애 문제나 사제의 금욕, 교회의 조직 문제에 대해 전임자의 보수적인 정통신앙은 유지할 것을 공표했다.

2010년 고령의 교황은 뇌졸중 후유증과 심장병 등 건강 악화와 함께 시력 장애까지 겪게 되면서 교황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생전 사임’은 지난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와 1294년 은퇴한 첼레스티노 5세에 이어 세 번째로 기록된다.

교황직에서 사임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명예 교황 타이틀과 함께 바티칸에 머물며 다양한 신앙적 저술 활동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은퇴 교황과 현직 교황 등 ‘두 교황’이 바티칸을 찾은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천한 저를 주님 포도밭의 일꾼으로 뽑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도구로도 일하실 줄 아신다는 저의 걱정을 달래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는 여러분의 기도에 의지합니다. 영원토록 우리의 항구한 도움이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의 기쁨 안에서 하느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과 지극히 사랑받는 어머니 마리아님이 우리를 지켜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2005년 4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 첫 강복 中)

성 베네딕토 규칙서를 기반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좋아하고 실천했던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선종했다. 하지만 그가 모든 종교의 벽을 허물고 인종 간 차별을 끊고 사랑이 무엇보다 우선되는 세상을 위해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평생을 헌신했음을 모든 이들의 가슴 속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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