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비행기의 발명....'하늘길을 개척하다'
#6. 비행기의 발명....'하늘길을 개척하다'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7.10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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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 비행모습(1903)
라이트 형제의 최초 동력 비행모습(1903)

[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새처럼 하늘을 날기를 꿈꾼 인간은 물리적 한계를 넘어 비행기라는 새로운 교통수단으로 하늘의 문을 열었다. 100여년에 걸쳐 이뤄진 끊임없는 노력 속에 비행기는 혁신적 발전을 거듭했고 인간은 이제 언제 어디서나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하에서는 동력 비행기의 발전 과정에 공헌한 주요 인물들과 비행기의 역사에 얽힌 굵직한 사건들을 되짚어 보고자 한다. 

◆ 비행의 여명기 

초창기 항공공학의 선구자로 ‘항공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케일리(George Cayley, 1773~1857)는 영국의 공학자이자 비행사다. 

조지 케일리(George Cayley)
조지 케일리(George Cayley)

비행의 기반 원리와 힘을 이해한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그는 비행기의 기초적인 여러 원리를 처음으로 밝혔다. 또 세계 최초로 글라이더 비행에 성공했지만 적절한 추진력과 양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경량 엔진이 개발되기 전까지 안정된 비행은 불가능하다는 정확한 예측도 내놓았다. 

이후 독일 항공의 개척자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 1848~1896)’은 조지 케일리가 고안한 설계를 바탕으로 글라이더를 제작하고 수많은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1891년 처음으로 사람이 탈 수 있는 글라이더를 개발해 행글라이더 시대를 열었다.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
오토 릴리엔탈(Otto Lilientha)

하지만 당시 글라이더 제어는 조종사의 체중 이동으로만 이뤄져 강한 바람을 만나면 순식간에 통제가 불가능했다. 오토 릴리엔탈은 1896년 실험 도중 강풍을 만나 추락사했다.  그가 23년에 걸친 상세한 실험 데이터를 담아 발행한 저서 <Birdflight as the Basis of Aviation>은 라이트 형제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동력비행의 완성 

미국 비행기 제작자이자 항공계의 개척자 ‘라이트 형제(윌버 라이트1867~1912·오빌 라이트1871~1948)’는 역사상 최초로 동력비행기를 조종해 지속적인 비행에 성공했다. 그들의 가장 큰 업적은 입체제어가 가능한 항공기를 제작했다는 것이다. 

라이트 형제(오빌 라이트·윌버 라이트)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한 라이트 형제

자전거점을 운영하던 형제는 오토 릴리엔탈이 글라이더를 실험하다 사고사한 사실을 알고 비행기 연구에 뛰어들었다. 1900년부터 1000회에 이르는 글라이더 시험비행과 200회 이상의 비행기 모형 시험을 했다. 

1901년(왼쪽)과 1902(오른쪽)글라이더를 시험하고 있는 라이트 형제.
1901년(왼쪽)과 1902(오른쪽) 글라이더를 시험중인 라이트 형제

독자 개발한 가솔린기관을 기체에 탑재해 1903년 12월 역사상 처음으로 지속적인 동력비행이 가능한  ‘라이트 플라이어 1호(Wright Flyer 1)’ 개발에 성공했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12초간 36m 비행과 59초간 243.84m 비행에 성공했다. 1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비행이었지만 새로운 항공 시대를 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플라이어 1호는 현재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산하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1903년 12월 플라이어1호의 비행
1903년 12월 플라이어1호의 비행

이어 1904년 45분 비행에 성공했으며, 1905년 플라이어 3호는 여러 차례의 주회(周回)비행과 40km를 38분에 비행하는 기록을 세웠다. 1908년 이후 형제는 유럽 각지를 순회하면서 비행을 공개해 성과를 인정받는 한편, 1909년 비행기회사를 설립했다.  

◆ 라이트 형제를 둘러싼 수난과 분쟁   

사실 1903년 동력 비행기 '라이트 플라이어'의 첫 비행은 인정받지 못했다. 자전거 가게를 하던 형제가 ‘최초의 동력비행기 발명가’라는 사실에 축하보다는 시샘이 쏟아졌고 이후 수많은 비판과 반박 속에 이권 쟁탈전에 휘말린다. 

특히 스미소니언 과학협회 간부인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1834~1906) 박사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1899년 그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 라이트 형제가 더 일찍 연구를 시작한 본인의 성과를 훔치고 그 영광을 대신 차지했다고 주장했다.  

글렌 커터스(Glenn Hammond Curtiss)
새뮤얼 랭글리(Samuel Langley)

결국 1904년 7월. 랭글리 대 라이트 형제의 비행 대결이 펼쳐진다. 동력비행기를 타고 관중 앞에서 시범을 보였는데 결과는 라이트 형제 완승이었다.

이후에도 유럽 등 다른 항공선구자들과는 달리 라이트 형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질시 속에 연구를 이어나가야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1908년 윌버와 오빌은 유럽과 미국에서 여러 차례 시범 비행을 선보였고 세계 첫 동력 비행이라는 타이틀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점차 없어졌다. 라이트 형제는 회사를 설립하고 미 국방부 등과의 비행기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끊임없는 법적 분쟁은 라이트 형제의 새로운 설계를 방해하는 요소였다. 대표적으로 항공기 대량 생산을 목표로 하던 글렌 커터스(Glenn Hammond Curtiss, 1878~1930)와의 특허 분쟁을 들 수 있다.   

글렌 커터스(Glenn Hammond Curtiss)
글렌 커터스(Glenn Hammond Curtiss)

1913년 2월, 라이트 형제가 커터스사와의 특허권 분쟁에서 마침내 승소하면서 미국에서 생산되는 비행기의 로열티(특허료) 20% 권한을 갖게 됐다. 하지만 긴 법정 싸움으로 미 항공산업은 독일 등 유럽보다 뒤처지게 되었고 라이트 형제의 대중이미지도 큰 손상을 입었다. 

한참 소송이 진행되던 1912년 5월 형 윌버가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나자, 동생 오빌은 사업에 흥미를 잃고 회사 주식 전량을 매각했다. 오빌은 1948년 1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윌버 라이트(왼쪽)와 오빌 라이트(오른쪽)
윌버 라이트(왼쪽)와 오빌 라이트(오른쪽)

한편,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 참전하게 된 미국 정부는 라이트 형제의 특허료를 1%까지 대폭 인하하는 한편 커터스사의 비행기 제조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미국 항공기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라이트 항공 산업과 커티스 항공기 회사는 1929년 합병해 ‘커티스-라이트사(Curtiss-Wright Corporation)’로 탄생했다. 회사는 미국 굴지의 항공기 제조업체로 성장해 현재까지 항공우주산업의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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