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송협 편집국장] 참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 사람 속이라고들 합니다. '싱크홀’의 원인이며 ‘석촌호수’ 수위를 변형시킨 ‘괴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555m 꼭대기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떡하니 올려놨으니 말입니다.

나이 구순(九旬)의 노익장에서 비롯된 이 거대한 건물 꼭대기에는 건립 과정에서 사고로 숨져간 근로자들의 이름 대신 정치인과 공직자, 그리고 온갖 단체명이 빼곡하게 박혀 너무 높아 목을 젖혀도 찾아볼 수 없는 꼭대기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금빛 찬란한 명패 속 인물 대다수는 정작 이 건물 건립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데도 말입니다. 이 무시무시한 건물이 완공되는 과정에서 여러명이 목숨을 잃고 다치는 참변과 아쿠아리움 균혈로 물이 새거나 영화 관람 당시 건물이 흔들리는 괴기스런 현상에 공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인물들로 눈에 띕니다.

마치 누군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희생한 점을 인정받아 세워지는 구승비(口勝碑)라도 되는 듯 참으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단체들이 이 명판을 채우고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명시된 인물과 단체들이 제2롯데월드 건립을 위해 헌신한 듯 느껴질 수 있는 대목입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친일기업으로 낙인찍힌 롯데그룹 형제들의 어눌한 한국말에 “말 똑바로 하라”며 삿대질?하던 ?여당 실세 정치인과 공사를 중단시켰던 서울시 수장의 이름도 버젓이 걸려있습니다

이 밖에도 거대한 이 건물의 건립과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단체들은 도대체 왜 명판에 박혀 있는데 당최 알 수가 없습니다. OO부녀회를 비롯해 무슨 협의회, OO운동 협의회는 기본이며 관할 구청의 부서란 부서는 모조리 구승비에 이름을 올려놨으니 말입니다.

상량식이 열린 이날 행사에는 고집스레 자신의 숙원사업을 이룬 당사자 신격호 총괄회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주인 없는 집에 객들만이 자축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봐도 금빛 화려한 명패 속 주인공은 기초공사부터 건물이 완공되는 순간까지 피땀을 흘렸던 근로자들임에 분명한데 전혀 엉뚱한 인물들의 부끄러운 이름만이 덩그러니 박혀 있어 민망함과 씁쓸함이 파고처럼 밀려왔습니다.

명심보감(明心寶鑑) 격양시(擊壤詩)에 보면 “大名豈有鐫頑石 대명기유전완석, 路上行人口勝碑 노상행인구승비”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이름을 함부로 돌에 새기려 하지말고 사람들의 입과 입에서 당신을 칭송하는 것이 돌에다 새기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니면서도 세상에 이름 석 자를 남기려고 해서는 안 될 방법으로 이름을 남기려 하는 그 자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임에 분명하다고 옛 선현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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