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황정우 금융경제부장] 혈맹관계. 미국과 한국 사이의 관계를 얘기할 때 쓰는 말이다. 하지만 말로만 혈맹이지 사실상 주종관계에 가깝다. 혹자는 한국이 만약 유럽에 위치해 있다면 ‘주요 국제정치 행위자(major international actor)’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랬다면 미국은 한국을 달리 봐도 한참 달리 봤을 것이다.

한국이 미국에 종속돼 있다는 사실은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자국의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분야는 바로 외환시장이다.

실질실효환율(REER)은 각국의 물가와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 대비 자국 통화의 대외 가치를 측정하는 데 이용된다. 기준점(100)보다 환율이 높아지면 수출경쟁력이 낮아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지난 9월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108.33으로 지난해 3월 107.89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다.

변동환율제를 도입한 나라 대부분이 이 경우 정부가 환율에 개입해 자국 통화 강세를 통해 수출 부진을 해소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한다. 미국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정부는 표면적으로 환율 조작국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이 한국 정부의 환율정책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때문이란 설명이 통설이다.

일례로 지난 4월 미국 재무부는 환율보고서를 내놓고 한국이 원화 가치의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한 의혹이 있다며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줄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그러자?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오름세가 이어졌다.

지난 4월30일 1068.1원이던 월·달러 환율이 5월29일 1109.2원으로 상승했고, 6월30일 1116.3원, 7월31일 1172.2원으로 계속 오르다가 9월 7일 1204.3원으로 연중 최고점을 찍은 것.

문제는 이같은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한 정부에 있다. 얼마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가국들이 환율조작 문제 원칙을 만들었다는 발언과 관련해 언급을 할 예정이었으나 한국 측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는 후문이다.

나름 정부가 경상수지 흑자국이라 할 지라도 수입이 줄어 흑자가 되는 불황형 흑자국이라는 어필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미국을 국내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국내 중소규모의 수출기업들은 속이 타들어가며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데 한국의 정치는 기득권 쟁탈을 위한 집권에 몸이 달아 기회주의만 판을 치는 형국이다.

미국에 맞서 아무리 짓밟혀도 낮게 피어나는 민들레꽃 같은 자존심 있는 한국정치를 기다리는 건 바보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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