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인 부실 관리로 일어난 예고된 참사”


[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최근 몇 년을 주기로 매스컴에는 ‘총기 사고’라는 단어가 잊을만하면 오르내렸다. 더 큰 문제는 이 주기가 점점 짧아진다는데 있다. 지난 13일 발생한 서울 내곡동 예비군 총기사고는 ‘세종시 편의점 엽총 사건’과 ‘화성시 엽총 사건’에 이어 올해 들어 벌써 세 번째다.


군 참사로 기억될 ‘김일병 GP 총기 난사’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예비군 훈련장에서 무차별 총기 난사로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크게 다치는 어처구니없는 악몽이 재현된 것이다.


이같이 참혹한 짓을 저지르는 가해자들의 심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관계당국의 관리 부실로 인한 ‘예고된 참사’였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관심병사’라는 데이터를 토대로 미리 막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방치한 결과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김일병부터 예비군 난사까지끔찍했던 순간


지난 13일 오전 10시 45분께 서울 서초동 내곡동 육군 52사단 210연대 예비군 훈련장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예비군 최모(24)씨가 지급받은 K-2 소총을 난사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최씨는 영점 사격 훈련 중 실탄 10발이 장착된 탄창을 소총에 끼우고 1발을 사격한 후 주변 예비군들을 향해 7발을 난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최씨는 사건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최씨가 쏜 총에 맞은 박모(24)씨와 윤모(24)씨는 숨을 거뒀다. 나머지 부상자 2명은 현재 국군수도병원 등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총기 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발생한 최악의 군 총기 사건은 지난 2005년 발생한 ‘김일병 GP 총기 난사 사건’이다. 당시 사회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지금도 군내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의 대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김일병 사건은 2005년 6월 경기도 연천 28사단 휴전선 감시초소(GP)에서 김모 일병이 수류탄을 던지고 K-1 기관단총 42발을 난사해 장병 8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집단 따돌림과 욕설에 시달려 이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김일병은 2008년 5월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군대에서 ‘관심병사’라는 제도가 만들어졌던 계기가 됐다.


김일병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후 또 총기 사건이 터졌다. 2006년 8월 10일 경기 가평균 현리 육군 모 부대 소속 이모 이병이 동료 병사 2명에 총기를 난사해 1명이 숨졌다.


이후 국민의 기억 속에 잊혀져가는 듯 했던 총기사고는 2010년대 들어서 또 발생했다. 2011년 7월 인천 강화도 해병대 2사단 초소에서 김모 상병이 총기를 난사해 상관 등 4명을 살해했고 그 결과 2012년 1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로부터 3년 뒤인 지난해 김일병 사건에 필적할 만한 대형 총기 사고인 ‘임병장 사건’이 터졌다. 2014년 6월 21일 고성군 22사단 GOP에서 임모 병장은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해 5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같은 혐의로 임 병장은 올해 2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한편 올해는 민간인 총기 난사 사건도 일어났다. 지난달 2월 25일 오전 세종시 장군면 금암리의 한 편의점에서 강모(50)씨가 엽총을 난사해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이 사건으로 강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편의점 여주인 김모씨의 70대 아버지와 50대 오빠, 동거남 등 3명이 총상을 입고 급히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모두 사망했다.


이같은 총기사고의 빈번한 발생으로 국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관계당국의 부실한 관리가 논란의 도마위에 올랐다.


◆ 예비군 총기 사건은 통제 부실에 따른 ‘참극’


예비군 총기 사건은 ‘묻지마 범죄’의 전형적인 케이스다. 이같은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상해를 입힌 사람과 어떠한 관계도 없었고 ‘그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국내 범죄심리학의 권위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이번 사건이 과거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과 비교해봤을 때 차이점과 공통점이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수정 교수는 “앞서 발생한 총기 사건들의 피해자는 가해자가 섭섭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 상당수가 포함돼 있었지만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면식이 없던 사람들이라는 차원에서 차이점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그러나 가해자인 최씨가 ‘관심병사’였다는 측면에서 자신의 복무시절 피해를 줬던 사람들과 훈련에 참가한 다른 예비군들을 동일시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례와 무조건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 “군대에서의 경험이 떠오르면서 순간적으로 참지 못한 불만이 총기 난사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예비군 총기 사건을 일으킨 최씨는 현역시절 B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최씨는 특별관리가 필요했지만 다른 일반 예비군들과 마찬가지로 실탄을 지급받으면서 이같은 참극이 벌어진 것이다.


지난해 제대한 김모(24)씨는 “요즘 군대에서 관심병사 리스트에 오른 사병들을 상대로 면담을 진행한다고 들었다”며 “자세하게 어떤 교육을 받는지는 모르겠지만 면담은 한달에 한번 정도 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도 ‘메커니즘’이 존재한다고 정의한다. 이 교수는 “묻지마 범죄는 자신을 핍박했던 이들에 대한 일종의 복수극”이라며 “요점은 자신을 핍박했던 대상자가 명확하게 지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외톨이로 지내다보니 뒤죽박죽이 돼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 같은 심리적 불안감이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일반화되면서 반사회적 태도로 승화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번 사건의 가해자가 사이코패스와는 별개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최씨같은 부류는 본인 스스로 사회적 피해망상에 빠져 있다는 분석도 팽배하다. 실제 자신이 가해자 입장이지만 피해자라고 최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행동이 촉발됐을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가해자들을 무조건 사회가 만들어냈다는 문제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관리부재와 통제불능의 사회가 가해자들을 양산시켰다는 빗나간 의식은 가해자 스스로 자신이 저지른 행위를 정당화 할 ?뿐 아니라 또 다른 피해를 키울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사회와 군대의 통제불능만의 문제가 아닌 총체적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참극이다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은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한테 총기를 쥐어줌으로서 발생했다”며 “예견하기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어쩔 수 없는 불행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번 건은 관심사병 데이터만 잘 활용했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예견된 위험을 알았다면 그에 따른 대안이 있어야 했다”며 “군 기강과 이번 사건은 별 관계가 없으며 군기가 바짝 든 곳에서도 그런 구성원을 감별해내지 못할 경우 이같은 사건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방부는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에서 당분간 실사격 연습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15일 발표했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