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과학을 창시한 귀화 노비 출신 ‘장영실’
조선의 과학을 창시한 귀화 노비 출신 ‘장영실’
  • 황선영 기자
  • 승인 2019.06.0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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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황선영 기자] 인류가 문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계절과 자연의 흐름을 알기 위한 시간 측정이었다. 이른바 ‘시계(時計)’의 탄생 과정인데 인류가 처음 시간을 가늠하기 위해 만든 것이 해시계와 물시계다.

해시계와 물시계가 언제 처음 출현했는지는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이집트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그다지 낯설지 않은 해시계는 태양빛에 의해 생기는 그림자를 이용해 시각을 표시하는 장치다. 해시계는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해 왔다. 시계바늘이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것은 북반구 해시계의 그림자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는데서 유래했다.

이집트에서 해시계를 최초 사용했다면 동양에서는 언제부터 해시계가 출현했을까?

12세기 송나라 유학자 주희(朱熹)가 저술한 ‘권학문(勸學文)’에 해시계에 관한 내용인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라는 글귀가 나온다. 여기서 '광음'은 햇빛의 그림자를 의미한다.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18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양에서 해시계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시계는 434년(세종 16년)에 제작된 ’앙부일구(仰釜日晷)‘이며 이 뜻을 풀이하면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습을 한 해시계'를 의미한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모습의 해시계 ‘앙부일구’를 발명한 사람은 조선시대 과학 르네상스를 이뤄냈던 ‘장영실(蔣英實)’이다. 과학자이며 기술자, 발명가이기도 한 장영실은 세종대왕 치세 시절 왕의 총애를 받으며 기술과 예능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총신(寵臣)으로 기록되고 있다.

원나라 출신이었으나 귀화한 장영실 부모는 지금의 부산 동래헌 관비였다. 장영실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범죄를 짓고 고려로 도망와 살다 장영실을 낳은 것으로 추측된다.

1400년 태종이 지방의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해 중용시키기 위해 실시한 ‘도천법’에 따라 장영실은 미천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한양으로 입성하게 됐다. 즉 장영실은 이민족 범죄자의 아들이자 가장 천한 노비 출신이었다.

태종이 발탁하고 세종이 중용한 장영실은 뛰어난 학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천문기기를 개발하는데 성공하면서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게된다. 실제로 당시 세종은 “장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 뿐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講武)할 때 나의 곁이 둘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 장영실이 1433년 자동 물시계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발명한 것과 관련해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했지만 만약 이 사람(장영실)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 세종실록에 남아있다.

조선 전기시대 가장 화려한 과학 르네상스를 이뤄냈던 세종대왕과 귀화 관노 출신의 장영실은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우리나라 과학기술 문화의 자양분이었다.

장영실은 세종대왕의 적극적인 지원과 신뢰를 바탕으로 물시계인 자격루를 비롯해 해시계 앙부일구 ▲측우기 ▲천문관측기 혼천의 ▲천문관측을 위한 대간의 ▲휴대용 해시계 현주일구 ▲천평일구 ▲현재의 나침판인 정남일구 등을 개발하는 업적을 남겼다.

장영실이 개발한 양부일구, 현주일구, 측우기
장영실이 개발한 양부일구·현주일구·측우기

이 외에도 장영실의 최대 역작으로 간의대(簡儀臺)를 꼽을 수 있다. 간의대는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를 올려놓고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를 말한다. 1433년 세종대왕은 경복궁 안에 높이 9.4M 길이 14.4M 규모의 천문대인 간의대를 세우고 청동을 부어 간의((簡儀)를 설치했다.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 '간의'
조선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천문관측기기 '간의'

간의대는 천문에 관한 국내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첨성대와 더불어 천문학의 기본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우리민족의 과학기술 발전이 세계적으로도 앞서 있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편, 장영실은 1442년 강우량을 측정하는 측우기(測雨器)도 발명했다. 측우기는 그릇에 넓이가 달라도 일정 시간 동안 비가 고인 깊이는 일정하다는 점을 이용해 강우량을 측정하는 기구로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로 꼽힌다.

실제로 장영실이 1442년 개발에 성공한 측우기는 1639년 이탈리아 베네토 카스텔리가 제작한 측우기 보다 무려 200년을 앞섰던 것으로 알려진다. 

장영실은 우리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과학기술문화 시대를 개막한 ‘혁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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