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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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유럽에 널리 분포하는 개구리(European common frogs·학명Rana temporaria)는 번식기가 되면 연못에 수십 마리가 모여들고, 한 마리의 암컷을 두고 여러 수컷이 치열한 다툼을 벌인다.

베를린 자연사 박물관 연구팀이 발표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암컷 개구리는 '죽은 척' 연기를 해 원치 않는 짝짓기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논문은 국제학술지 '영국왕립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게재됐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Royal Society Ope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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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의 짝짓기는 한 마리의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수컷 여럿이 다투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한 번에 여러 수컷이 암컷에 올라타는 '찍짓기 공(mating ball)' 상태를 만들어내는데,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격렬한 짝짓기는 암컷에 큰 부담을 준다.

이번 연구를 이끈 캐럴린 디트리히(Carolin Dittrich) 박사는 "종종 암컷은 짝짓기 공 속에서 수컷들에 의해 깔려 죽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암컷은 수컷과의 격렬한 짝짓기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단이 없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연구팀이 '수컷 개구리가 암컷의 체격 차이에 따른 취향을 보이는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암컷이 수컷의 짝짓기를 회피하는 다양한 행동들이 포착된 것이다.

연구팀은 번식기의 '몸이 큰 암컷'과 '몸이 작은 암컷' 개구리를 준비해 수조에 넣고, 이후 번식기 수컷 개구리 한 마리를 1시간 동안 넣어 그 모습을 촬영했다. 당초 연구팀은 암컷의 몸집이 크면 더 많은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수컷이 큰 암컷을 선호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크기를 기준으로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지는 않았다.

연구팀이 실험 영상을 확인한 결과, 암컷 개구리는 원치 않는 짝짓기를 피하려고 총 세 가지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번째 회피 방법은 수컷에게 잡히면 암컷이 어떻게든 몸을 뒤집어 서로 위아래가 바뀌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암컷 아래에 깔린 수컷은 물속에 잠기게 돼 익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암컷과 몸을 분리하게 된다. 실험에서는 수컷에게 잡힌 54마리의 암컷 중 83%가 뒤집기 위해 애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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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수컷이 교미를 시도할 때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 수컷에 깔린 암컷의 48%가 이 방법을 사용했다. 두 울음소리 중 낮은 울음소리는 수컷이 다른 수컷을 경계할 때 내는 울음소리를 모방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은 울음소리의 목적은 밝히지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 회피 방법이 수컷에 깔리면 약 2분 동안 팔과 다리를 쭉 뻗어 경직 상태를 만들고 누워 이른바 '죽은 척'을 하는 것이다. 수컷에 깔린 암컷의 33%가 죽은 척을 했고, 수컷이 흥미를 잃고 나면 다시 정상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울러 첫번째(뒤집기)와 세번째(죽은척)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시도하는 경향이 강했고, 수컷과의 짝짓기가 큰 부담인 몸집이 작은 암컷일수록 이러한 회피 전략을 사용하는 경향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적으로 46%의 암컷이 짝짓기 탈출에 성공했고 몸집이 작은 암컷일수록 성공 확률이 높았다.

이번에 확인된 죽은 척은 의도적이라기 보다, 스트레스 반응에 의한 행동일 수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짝짓기 경험이 많지 않은 젊고 작은 암컷일수록 죽은 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이 심각한 교미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밀집된 번식 집단의 암컷 개구리는 우리가 생각해왔던 것처럼 수동적이지 않다. 수컷과의 교미에 늘 순응만 하는 것이 아닌, 거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샘플 수가 작고 자연환경과는 다르며, 수컷 여러 마리가 아닌 한 마리로 실험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다만 디트리히 박사는 "야생 환경에는 숨을 장소가 많기 때문에 암컷은 더 쉽게 수컷으로부터 도망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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