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독사에 물린 남성의 항체로 만든 ‘만능 뱀 해독제’ 탄생할까?
수년간 독사에 물린 남성의 항체로 만든 ‘만능 뱀 해독제’ 탄생할까?
  • 김정은 기자
  • 승인 2019.06.04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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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 뱀 중에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맹독을 가진 종류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매년 뱀에 물려 사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뱀에 물리는 사고를 열대 질병보다 무서운 '숨어있는 세계 최대 보건 위기'라고 언급했다. 매해 뱀독으로 8만1000명~최대 13만8000명이 생명을 잃고 40만 명 이상이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다행히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뱀 가운데 독사는 그 종류가 적고 독사라 해도 혈액독으로 갑자기 상태가 악화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국내 독사는 살모사·까치살모사(칠점사)·불독사 3종과 유혈목 1종 등 모두 4종이다. 이 중 신경독과 혈액독을 모두 가진 까치살모사는 물리면 호흡곤란으로 인한 사망에 이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뱀독 혈청을 만들기 위해 몇 년간 일부러 독사에 물린 사람이 있다. 미국 위스콘신 주에 사는 트럭 정비사 팀 프리드(Tim Friede)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2000년경 다양한 뱀독 사고에 대응하는 해독제를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지금까지 무려 200종에 달하는 뱀에게 물려왔다고 주장한다.

만능 뱀독 혈청에 도전하고 있는 팀 프리드(Tim Friede)
뱀독 혈청을 위해 수년간 뱀에게 물린 '팀 프리드(Tim Friede)'

독이 체내에 들어가면 면역체계가 반응해 림프구 일종인 ‘B세포(B cell)’가 독의 효과를 잃게 하는 항체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독사에 물리면 항체가 생기기 전에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에 프리드는 독사의 독을 소량 추출한 뒤 희석해서 몸에 투여했다. 그는 서서히 독에 대한 항체를 체내에 만들어 나갔다고 설명한다. 한번 독을 투여한다고 해서 완전한 항체가 생기지 않기 때문에 희석 농도를 바꾸며 몇 번씩 같은 독을 주사해야 했다.

또 독사마다 20~70개 단백질과 효소를 결합한 각기 다른 독을 가지고 있어 완전한 항체를 만들기 위해 세계에서 독사를 수집했고, 때로는 실수로 하루에 2번 독사에 물려 나흘간 혼수상태에 빠진 적도 있다.

프리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TV 취재에도 응했지만 의학 전문가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그간의 뱀독 주사로 면역 체계가 체내에 만들어졌다며 직접 독사에 물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독사에 물리는 모습을 유튜브 채널에 공개하기도 했는데 ‘기분 나쁘다’ 혹은 ‘어차피 독은 다 제거했을 것’이라는 부정적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독사에 물리는 모습을 공개한 유튜브 채널
독사에 물리는 모습을 공개한 팀 프리드의 유튜브 채널

그가 경험한 뱀독 증상은 ▲사방 3cm 붓기 ▲무릎부터 엉덩이에 걸쳐 붓기▲전신 두드러기 ▲과민성 쇼크 등 다양했다. 프리드는 본인 증상과 고통을 바탕으로 이제는 독이 주입된 양까지 맞출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저 별나고 무모한 사람으로 여겨지던 프리드의 도전에 주목한 사람이 면역학자인 야콥 그랜빌(Jacob Glanvlle) 박사다.

그랜빌 박사는 과거 제약회사 ‘화이자(Pfizer)’ 바이오엔지니어링 부서에서 근무했으며, 서로 적합한 특정 항체와 항원 조합을 찾는 과정을 단순화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 시스템으로 회사의 항체 의약품 개발 속도는 크게 향상됐다. 

디스트리뷰트 바이오 CEO '야콥 그랜빌'
디스트리뷰트 바이오의 야콥 그랜빌 CEO

화이자 퇴직 후 그랜빌 박사는 디스트리뷰트 바이오(Distributed Bio)라는 회사를 설립, 항체 데이터를 모은 항체 라이브러리와 적합한 조합을 발견하는 소프트웨어를 라이선스 방식으로 제공했다. 이후 직원을 늘리고 독감 백신 등의 개발에 착수했으며, 뱀독 혈청 제작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뱀독 혈청의 한계는 항체가 한 종류의 독에만 유효하다는 점이다. 가령 한국이라면 위험한 독사가 4종이기 때문에 혈청도 4종이 필요하지만, 인도에서는 위험한 독사가 60종에 달해 모든 독에 대한 혈청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혈청은 사용기간이 2년으로 짧고 가격이 매우 비싸다는 점도 문제다.

그랜빌 박사는 700종의 독사 게놈(유전체, Genome)을 분석해 사람에게 치명적인 단백질을 13가지로 분류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뱀독에 포함된 치명적인 단백질에 유효한 항체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디스트리뷰트 바이오 홈페이지
디스트리뷰트 바이오 홈페이지

수많은 뱀독에 대한 면역체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프리드의 존재는 그랜빌 박사의 구상을 실현해줄 열쇠였다. 실제로 프리드 항체를 검사한 결과, 놀랍게도 그의 항체는 한 번도 물린 적이 없는 독사의 독에도 유효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신약 개발 성공률이 매우 낮아 투자 여건은 여의치 않지만 디스트리뷰트 바이오社와 미국 국립보건원은 2018년 12월 공동으로 40만 달러(한화 4억 7200만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프리드 체내 항체에서 뱀독 혈청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 

현재 개발 중인 혈청은 인간 면역체계가 생산한 항체를 이용해 안전성(거부반응 등)을 보장할 수 있으며 향후 탈수·분말 과정을 통해 운반도 쉬워질 전망이다.   

그랜빌 박사는 "팀 프리드의 항체로 뱀독 혈청을 만들 수 있다면 연간 13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수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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