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송협 기자]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가를 아시나요?”

1445년 조선의 4대 임금인 세종대왕의 명을 받들어 집현전 학자 권제, 정인지, 안지 등이 편찬한 이 노래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통해 고려왕조를 몰아낸 태조 이성계와 조선 건국을 합리화하기 위한 서사시로도 유명합니다.

지난 10일 사상 최대 규모의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 발표가 있던 이날 대형 중견 군소 언론 할 것 없이 ‘이부진 호텔 신라 사장의 탁월한 리더십’등 유사한 제목으로 현대판 용비어천가를 제창하는데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서울시내 알짜 부지에 최대 규모의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이번 입찰 결과 호텔신라와 동맹에 나선 현대산업개발의 합작법인인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승전보를 올렸습니다.

당초 이번 시내 면세점 입찰 대전(大戰)은 자격 티켓을 확보한 신라호텔·현대산업개발 연합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외에도 이랜드와 신세계디에프, 롯데면세점, 현대디에프, SK네트웍스 등 유통공룡들이 대거 몰리면서 치열한 공방전이 기대됐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한 경합과 함께 여론 확전도 심화됐던 이번 사업자 선정에서 관세청 면세점 특허심사위원단은 정확한 실사와 공정 심사를 통해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자격 요건을 밝혔습니다.

이번 결정으로 그간 국내 면세점 점유율이 가장 높았던 롯데면세점은 역대 최대 규모의 시장을 장악하게 될 HDC신라면세점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의 강한 견제를 받게 됐습니다.

사업자 입찰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신세계 본점의 모든 것을 걸겠다고 공언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그간 삼성가의 절대 앙숙인 범현대가(현대산업개발)와 동맹을 맺은 사촌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의 진검승부에서 패배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시장 확장과 기업의 실적을 위해 핏줄도 과감히 끊어내고 과거의 적과도 손을 잡아야 하는 재벌가의 냉혹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근 메르스 여파로 제주 호텔신라가 악재를 겪을 당시 이부진 사장은 직접 현장을 점검하고 3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감수하면서 호텔 폐쇄를 단행하는 과감한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운영하는 브랜드에 대한 막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이 사장의 결단력은 곧바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며 때문에 이번 결실은 누가 보더라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울러 이 사장에게 있어 시내 면세점 사업자 선정은 삼성그룹을 비롯한 모든 경제계가 지켜보는 살얼음 같은 시험대였을 것입니다. 그만큼 입찰에 나선 이 사장의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 사장의 각고의 노력 끝에 쟁취한 결과를 놓고 언론들이 지나치게 오버하고 나서면서 그 순수성에 흠집을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HDC신라면세점이 시내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됐다는 발표와 함께 각 언론사는 일제히 이부진 사장 띄워주기에 바빴습니다. 마치 입을 맞추기라도 한 듯 분 단위로 이부진 사장을 찬양하는 ‘용비어천가’를 연호하고 나섰습니다.

한 대형 언론사는 사업권을 획득하지 못하면 옷을 벗을 각오로 일하겠다는 호텔신라 임직원의 과거 발언과 자신은 실패해도 옷도 벗지 못한다는 이부진 사장의 무용담을 첫 리드문에 걸어놓고 이 사장의 리더십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이 매체뿐만 아니라 대다수 크고 작은 언론이 마치 배포된 보도자료를 받아 챙기듯 이부진 사장 칭송을 위해 앞 다퉈 달려드는 촌극을 보여주는 하루였습니다.
저작권자 © 데일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