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포스트=김혜경 기자] 미국의 유명 TV시리즈 ‘왕좌의 게임’은 허구의 대륙인 웨스테로스에서 7왕국이 ‘철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그려낸 드라마다. 때로는 서로 동맹을, 때로는 서로 칼을 겨누며 오늘의 동지가 내일이 적이 되는 급박한 정세 속에 각 국은 주어진 단 한자리, 왕좌만을 호시탐탐 노린다.


대한민국 유통가에 때 아닌 왕좌의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7개의 대기업이 시내면세점 입찰권을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자리는 단 두 개. 이 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국내 내로라하는 유통공룡들이 다 뛰어들어 ‘총성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지난 27일 이랜드그룹이 후보지를 최종발표함으로써 7명의 선수가 모두 확정됐다. 선수들 명단도 화려하다. 면세점의 전통적인 강호 롯데를 비롯해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손잡고 나선 ‘HDC신라면세점’, 신세계, 현대백화점, 한화갤러리아, SK네트웍스, 그리고 이랜드까지, 이 중 단 2곳만 입찰권을 최종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면세점은 포화 상태인 국내 유통시장에서 업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마지막 돌파구다. 시내면세점은 최근 업계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 혹은 ‘순이익 1000억원의 신 먹거리 사업’ 등으로 불리며 경기 불황 속에서도 나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시장 규모는 8조3077억원으로 전년 대비 21.6% 성장했다. 그 중에서도 서울 시내면세점 6곳의 매출 총액은 4조3502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절반 이상(52.3%)을 차지하고 있다.


늘어나는 중국인 관광객(요우커)과 내수 시장의 침체로 시내면세점 진출은 이제 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버렸다. 이들은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기만 하면 장밋빛 전망이 펼쳐진다는 기대감을 안고 치열한 눈치 작전을 펼치고 있다. 다음달 1일 예정인 입찰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현재 운영 중인 서울 시내면세점은 롯데면세점(강남구·송파구·중구)과 신라면세점(중구), 동화면세점(종로구), 워커힐면세점(광진구) 등 총 6곳이다. 서울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강북 지역 4곳과 강남 2곳에 각각 위치해있다.


이번에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후보지도 대부분 강북에 몰려있다. 현대백화점그룹이 중견기업과 손을 잡고 만든 합작법인 ‘현대DF’의 후보지가 강남지역이라는 것만 제외하고 나머지 6개 기업은 최종 후보지를 강북으로 낙점했다.


시내면세점 선정기준은 ▲경영능력(300점) ▲관리역량(250점) ▲관광 인프라 등 주변환경요소(150점) ▲중소기업 제품 판매실적 등 경제·사회 발전 공헌도(150점) ▲상생협력 노력(150점) 등이다.


주로 외국인을 타겟으로 하는 면세점사업이니 만큼 주변 환경이 극도로 중요하다. 특히 관세청인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3곳(중소기업 1곳 포함)을 추가로 허용한 이유가 ‘관광객 유치’인 만큼 각 업체가 내세운 후보지에 얼마나 관광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느냐가 이번 면세점 사업권 쟁탈전의 승패를 좌우할 것으로 분석된다.


이처럼 면세점 사업예정지가 중요한 변수로 부상하면서 단번에 후보지를 발표한 업체가 있는가 하면 입찰 참여 여부는 밝혔지만 마지막까지 위치 발표를 두고 뜸을 들이는 업체도 있었다.


이번 입찰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은 현재 현대산업개발과 호텔신라의 합작품 ‘HDC신라면세점’이다. 이들의 후보지는 ‘용산 아이파크몰’이다. 앞서 현대산업개발은 올해 초부터 이곳에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형 면세점을 세우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이들이 선정한 용산은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기 좋은 위치에 있으며 아이파크몰은 기차역과 지하철역과 연결돼 있어 교통의 요충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대형 관광버스가 몰려 교통난을 앓고 있는 명동과 동대문과는 달리 충분한 주차시설이 갖춰져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하다.


신세계그룹은 ‘명동 본점 명품관 전체’를 시내면세점으로 탈바꿈하겠다는 승부수를 던졌다. 강남점과 본점을 두고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후문이다. 전통적으로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명동의 특색을 살려 본점과 남산, 그리고 명동을 연결해 만든 관광벨트로 경쟁사들과 차별화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신세계그룹이 사업자로 선정될지 소공동 롯데면세점과 명동상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이 예상된다.


면세점 시장의 전통적 강호인 롯데면세점은 중국인 관광객이 명동에 이어 두 번째로 선호하는 지역인 동대문에 깃발을 꽂았다. 롯데면세점은 ‘동대문 피트인’에 복합면세타운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명동만큼 요우커가 북적이는 동대문이지만 이곳에는 면세쇼핑 인프라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롯데는 이 점을 잘 살려 후보지로 선정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 SK네트웍스도 패션타운 관광특수라는 이점을 살려 ‘동대문 케레스타’를 최종 후보지로 결정했다.


한화갤러리아는 서울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여의도 63빌딩’에 면세점을 유치할 계획이다. 빌딩 내 복합쇼핑시설과 면세점 연계를 통한 시너지 창출에 주력하겠다는 방침이다. 63빌딩은 9호선으로 연결돼 공항과의 거리가 가까운 것이 강점이다.


가장 마지막에 면제점 후보지를 발표한 이랜드그룹은 ‘홍대'를 최종 후보지로 낙점하고 시내면세점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이랜드는 홍대 입구 부근에 위치한 마포구 서교동 서교자이갤러리 부지로 확정하고 세계 최대 면세기업 듀프리와 중국 최대 완다그룹 여행사의 지원을 받아 면세점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랜드는 자사 유통 컨텐츠와의 시너지 효과를 위해 강남점, 강서점, 송파점 등 자사 보유 유통 매장을 면세점 후보지로 올려놓고 고심했지만 홍대가 지리적 위치로 면세점 사업 추진하기에 가장 이상적이라고 판단해 최종 후보지로 낙점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강남에 자리잡은 현대DF는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상생'을 앞세운 현대 DF는 모두투어, 엔타스듀티프리 등 중소, 중견기업을 참여시켰다. 이번 면세점 입찰에 참여하는 대부분 기업들이 강북을 후보지로 내세웠다는 점을 역이용한 셈이다. 현대백화점은 면세점 사업이 확정될 경우 인근에 위치한 코엑스 단지와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유통업체들이 공항면세점보다 시내면세점에 더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공항면세점이 최근들어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원래 공항면세점보다 시내면제점이 이익을 훨씬 많이 얻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도 입찰에 참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섣불리 어느 쪽이 유리하다고 예측하기는 어렵다”며?“다만 그때 그때 달라지는 상황에 예의 주시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사업권 입찰은 다음달 1일 예정돼 있으며 이르면 7월 중 대기업 2곳과 중소·중견기업 1곳이 각각 선정될 계획이다.


(사진=롯데월드몰에 위치한 롯데면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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