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못 잔 날,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잠을 설친 다음 날, 머리가 멍하고 집중이 흐트러지는 건 흔히 겪는 일이다. MIT 연구팀은 이 단순한 피로감의 순간, 뇌 안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포착했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 상태에서는 깨어 있는 동안에도 뇌척수액(CSF)이 일시적으로 뇌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다시 유입된다. 이는 평소 수면 중 일어나는 '노폐물 세정 과정'이 깨어 있을 때에도 간헐적으로 작동하는 것으로, 뇌가 부족한 잠을 스스로 보충하려는 반응으로 해석된다.
이번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에 게재됐다.
◆ 주의력이 사라질 때, 뇌가 시작하는 청소
MIT의 로라 루이스(Laura Lewis) 교수 연구팀은 26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수면 후와 수면 박탈 상태를 비교했다.
참가자들은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와 EEG(뇌파계)를 착용한 채 시각·청각 자극에 반응하는 주의력 테스트를 수행했다. 연구팀은 동시에 심박수, 호흡, 동공의 크기 변화를 측정했다. 그 결과 수면이 부족한 참가자들은 반응 속도가 느려졌고, 일부는 자극 변화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루이스 교수는 "주의력이 떨어지는 순간 뇌척수액이 뇌에서 밀려나가고, 주의가 회복되면 다시 뇌 안으로 유입되는 현상이 관찰됐다"며 "수면을 취하지 않으면 평소엔 보이지 않는 뇌척수액의 파도가 깨어 있는 동안에도 나타나지만, 그 대가로 주의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 뇌와 몸이 함께 반응하는 '정화의 순간'
주의력이 사라지는 순간은 뇌의 변화에만 그치지 않았다. 호흡과 심박수가 일시적으로 느려지고, 동공은 수축했다. 동공 수축은 뇌척수액이 유출되기 약 12초 전에 시작됐으며, 주의가 돌아오면 다시 확장됐다.
루이스 교수는 "이 현상은 뇌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몸 전체가 함께 반응하는 생리적 사건으로 보인다"며 "주의가 끊기는 순간, 뇌와 신체가 동시에 일시적인 '정화 모드'로 전환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러한 현상이 주의력, 체액 순환, 심박 조절 등을 통합적으로 조절하는 단일 신경 회로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루이스 교수는 "이번 결과는 주의력과 뇌의 체액 흐름, 혈류, 혈관 수축이 하나의 회로로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슬론재단, 피우 생의학 펠로십 등 다수 기관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연구팀은 앞으로 뇌척수액의 흐름과 인지 기능 저하 간의 연관성을 정밀하게 분석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