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숨은 길, 30만km 도로망 새로 밝혀졌다

2025-11-10     김정은 기자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지에 남아 있는 고대 로마 시대의 보행자용 횡단로.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Flickr

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수천 년 동안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제국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연구는 그 길들이 생각보다 훨씬 넓고, 또 로마가 아닌 곳으로도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덴마크 오르후스대학교 연구팀이 공개한 고대 로마 도로망 지도 '이티네르-이(Itiner-e)' 분석 결과, 지금까지 확인된 도로 길이는 약 19만km에서 30만km로 늘어났다. 이는 지구 둘레의 7배에 달하는 규모로, 로마 제국의 도로망이 인류사에서 얼마나 거대한 인프라였는지를 입증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데이터(Scientific Data)'에 게재됐다.

◆ '로마로 향하지 않는 길'이 더 많아 

"로마 도로는 제국의 확장과 통합을 상징하지만, 그 위치가 정확히 확인된 구간은 전체의 3%에 불과했다." 연구를 이끈 톰 브루그만스(Tom Brughmans)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지난 200여 년간 축적된 로마 도로 자료를 하나의 공개 데이터로 통합한 것"이라며 "각 도로 구간의 신뢰도와 출처를 명시해 누구나 검증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티네르-이는 로마 제국 전역의 도로 위치를 표준화한 첫 오픈데이터다. 연구팀은 '그리스·로마 세계의 바링턴 지도(Barrington Atlas of the Greek and Roman World)'와 '디지털 로마 및 중세 문명 지도(DARMC)'를 비롯해, 비문, 이정표, 발굴 기록, 19~20세기 고지도, 위성사진 등을 종합해 데이터를 구축했다.

터키 킬리키아 지역에서 최근 발견된 로마 시대 이정표의 3D 렌더링 이미지.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tiner-e

연구팀은 위성사진과 옛 지형도를 대조해 도시 개발 이전의 도로 흔적을 추적했고, 일부는 댐 건설 전 촬영된 위성 이미지를 통해 수몰된 구간까지 찾아냈다.

◆ '제국의 길', 오늘의 길로 이어져 

이티네르-이 데이터에는 40개국 14,769개의 도로 구간이 포함돼 있으며, 총 길이는 29만9,171km에 이른다. 기존 데이터보다 11만km 이상 확장된 수치다.

분석 결과, 로마 제국의 육상 교통 중심지는 로마가 아닌 북이탈리아의 포 계곡과 알프스 회랑 지역이었다. 반면 로마는 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해 육로 기준으로는 오히려 '막다른 길(cul-de-sac)'에 가까웠다. 제국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해상로와 하천 교통 덕분이었다.

브루그만스 교수는 "로마 제국 시기의 교통 인프라는 19세기 산업혁명 이전까지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었다"며 "이번 데이터는 지난 2천 년 동안 인류의 이동과 연결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구팀이 구축한 로마 도로망 지도 '이티네르-이(Itiner-e)'는 웹사이트(https://itiner-e.org/)를 통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로마 제국의 도로망을 시각화한 '이티네르-이(Itiner-e)' 웹 지도 화면.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Itiner-e.org

실제 접속하면 연구팀이 확인한 로마 제국의 도로망이 시각적으로 표시되며, 각 구간의 출처와 신뢰도 정보도 함께 제공된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티네르-이 프로젝트를 확장해 로마 도로망의 전모를 보다 정밀하게 복원할 계획이다. 그는 "현재 확인된 30만km는 시작일 뿐이며, 향후 더 많은 지역 자료를 통합해 로마 도로의 전체 구조를 규명할 것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