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여는 '배터리 혁신'의 시대

2025-10-07     김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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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데일리포스트=김정은 기자ㅣ스마트폰과 전기차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이제 인류의 '에너지 심장'이라 불린다. 하지만 리튬이온 배터리는 희소 금속 의존, 폭발 위험, 충전 속도와 에너지 밀도 한계 등 여러 제약을 안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는 연구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 IBM은 AI와 양자컴퓨팅을 결합해 수천만 가지 화학 조합 속에서 새로운 전해질과 전극 소재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인간이 수년간 실험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를 AI는 단 며칠 만에 도출하며, 배터리 연구의 속도와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 AI가 사흘 만에 찾아낸 '리튬 절감형 배터리'

MS 연구팀은 2023년 충전식 배터리 전해질을 개선하기 위해 3,250만 가지 후보 물질을 AI로 탐색했다. 그 결과 단 80시간 만에 리튬 사용량을 70% 줄일 수 있는 신소재 'NaxLi3−xYCl6'를 찾아냈다. 기존 실험이었다면 수년이 걸릴 과정을 불과 사흘 남짓한 시간에 끝낸 셈이다.

이번 연구는 MS의 과학 플랫폼 '애저 퀀텀 엘리먼츠(Azure Quantum Elements)'와 AI 모델 'M3GNet 프레임워크'를 통해 진행됐다. AI는 원자의 움직임과 결합 구조를 분석해 안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조합만 남겼고, 수천만 개의 후보는 단계적으로 압축되어 최종 한 가지로 좁혀졌다.

네이선 베이커(Nathan Baker) 프로젝트 책임자는 "AI가 과학적 발견의 속도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신소재는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Pacific Northwest National Laboratory)에서 실제 합성 및 테스트가 진행 중이다.

MS의 접근은 단순한 속도 향상을 넘어 '데이터 기반 과학'의 전환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존 연구가 직관과 경험에 의존했다면, AI는 방대한 화학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성공 가능성이 높은 후보를 스스로 예측한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는 실패 확률을 줄이고, 실험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 IBM과 대학 연구팀, 'AI 재료과학자'가 이끄는 시대

IBM 역시 AI를 활용해 기존보다 이온 전도성이 높은 새로운 전해질 조합을 찾아냈다. 배터리 전해질은 염, 용매, 첨가제 등 다양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가능한 조합이 사실상 무한대이지만, IBM의 화학 기반 AI 모델은 수십억 개의 분자를 학습해 전기화학적 특성을 예측하고 최적의 조합을 제시했다.

IBM 리서치는 "완전히 새로운 물질을 발명하기보다, 기존 소재의 조합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산업 적용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국제학술지 'NPJ Computational Materials'에 게재됐다. 또한 IBM은 배터리 수명 전반의 열화 과정을 예측하는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모델을 개발해 실험 효율을 높였다. 단 50회의 충방전 시뮬레이션만으로도 장기 성능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

ⓒ데일리포스트=이미지 제공/NPJ Computational Materials(2025)

AI는 이제 단순한 실험 보조 도구를 넘어 '재료과학자'로 진화하고 있다. 뉴저지공과대학(NJIT)의 디바카르 더타(Dibakar Datta) 교수팀은 AI 모델 'CDVAE'를 이용해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수 있는 차세대 전극 후보 다섯 가지를 선별했다. 더타 교수는 "우리는 AI에게 재료과학자가 되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AI는 수백만 개의 화학 조합을 스스로 탐색하며, 인간이 미처 상상하지 못한 물질을 제안한다. 여기에 양자컴퓨팅이 결합되면 복잡한 화학 반응 계산의 정확도는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MS와 IBM은 이미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분자 모델링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AI 학습의 정밀도 역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AI가 수십억 개의 화학 조합을 분석하고, 양자컴퓨터가 그 결과를 정교하게 다듬는 시대. 배터리 소재의 발견은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AI는 이제 과학의 속도와 방향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